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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usical

포퓰리즘을 노래한 친절한 포퓰리즘, 「에비타」




2012년 1월 22(일오후 6시 반
LG아트센터
연출 이지나  음악감독 천정훈  
배역 리사, 임병근, 박상진, 박선우
  

많이도 바뀌었다. 국내 초연 당시의 ‘어렵고 지루하다’는 평을 지우기 위한 고민이 역력하다. 할 말이 분명해진 작품은 역사로의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돌아왔다. 묘사적이던 배경은 거대한 계단과 전구 조명으로 깔끔하게 이미지화하고, 장례식(Requiem For Evita)·도시로의 진출(Buenos Aires)·구제(And The Money Kept Rolling In) 장면의 군무는 화려해 눈을 쉴 구석이 없다. 뮤지컬은 아르헨티나의 과거를 배경으로 한 에바의 화려한 ‘쇼’다. ‘쉬운 작품을 만들자’라면 목표는 성공했다. 그러니 확인해 볼 것은 목표, 그 자체의 타당함이다.

가장 먼저 손을 봐야 했던 부분은  ‘Song-through 형식의 불친절’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음악의 틈새에 영상과 대사를 끼워 넣었다. 영상은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연보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따르도록 돕는다. 대사의 역할도 비슷하다. 서거 방송, 페론 석방을 요구하는 에바의 연설, 에비타의 위선을 지적하는 체의 외침이 그렇다. 이에 더해, 대사는 캐릭터와 상황을 제법 손쉽게 구축하는 장치가 된다. 에바가 소리 내서 “게바라”를 부를 때, 원작에서 시간 속에 떠있던 이 캐릭터는 다리를 갖는다. 이제 체는 장면 안팎을 넘나드는 의뭉한 해설의 역할이 아닌, 에바를 가까이에서 도우면서도 가장 명확하게 비판하는 ‘인물’이 된다. 레인보우 투어의 대사는 심지어 개그까지 시도하며 실패를 기정사실화 한다. “에바? 뭘 봐?”

그렇다면 이 친절한 안내자는 매력적인 방향 감각을 가지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다. 인물들은 욕망에 불타고, 솔직히는 천박하다. “미치겠네”라며 과장된 몸짓을 짓는 마갈디에게는 무능한 난처함에서 오는 연민과 향수가 없다. 가사도 이런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다. 본격적으로 몸을 팔아 계단을 딛겠다고 결심한 에비타에게는, ‘Buenos Aires’를 밟고 꿈으로 부푼 소녀적인 열망이 부재했고, 기존 체제에 대한 반발이 축소됐으며, 이 때문에 그녀의 당당함은 껍질만 남았다. 에바 페론-후안 페론, Santa Evita-아르헨티나 국민 간의 관계가 ‘이용’의 끈으로만 엮인 것은 특히 아쉽다. 부통령을 향한 마지막 연설도 표현의 과부화로 단순한 욕심으로만 기억된다.

에비타의 메인 넘버라고 할 수 있는 ‘Don′t Cry For Me Argentina’가 주는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다. 이전만큼 와 닿지 않는다. 시퀀스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본래 이 고백적 노래가 ‘나를 사랑해줘요’라며, 악물고 살아온 에바의 솔직한 얼굴을 순간적으로 보여준다면, 이제 이 곡은 권력욕이라는 가면의 지속으로 보인다. 오히려 위로 올라가려는 ‘A New Argentina’, ‘Rainbow High’의 에너지가 명쾌하다. 솔직함의 얼굴이 바뀐 것이다.

에비타의 욕심과 파퓰리즘. 이 결단 있는 해석을 앞에 두고, 친절은 문제가 돼 버렸다. 실존 인물의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안내의 결과가,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의 원천인 다면성을 없애는 것이라면 말이다. 원작에 불친절이 있었다면, 그것은 흔히 짐작하듯 Song-through라는 형식의 문제점이 아니다. 의뭉스러움을 위한 의도적 장치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입을 다시는 기분이 없는 에비타는 허술하다.

어쨌든 작품은 쉽고 재미있다. 게다가 배우들은 호연이다. 리사의 에바는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고, 흰 정장을 입고 중앙으로 걸어 나온 훤칠한 임병근의 체는 잘생겼다. 그런데도 어딘가 아쉬운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온’ 관객들을 난감하게 했었던 바로 그것이다. 이런 「에비타」의 변모는 관객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Oh, What A Populism”을 외칠 상황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