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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독서단상5. 『제리』 외 1. 이 빌어먹을 외로움 속에서, 제리, 날 그냥 가만히 안아줄래, 『제리』 제리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혜나 (민음사, 2010년) 상세보기 이런 식으로 외로워 본 적이 있다. 아니, 외롭다는 것이 대개 이런 식일 것이다.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이런 전언.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생각하고 이해해… 아니야, 다 괜찮으니까, 지금은 “제발, 가만히 안고 있어줘.” 언젠가 이 소설에 대한 평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섹스와 음주에 탐닉하는 이 한심한 20대에게,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가 얼마나 공감할 지 모르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게 물어보면 “글쎄.” 이렇게 답해야겠다. 진짜 루저건, 가끔씩 루저가 되건, 엄살만 피우는 것 같은 非루저건,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경우에는.. 더보기
독서단상1. 『달려라, 아비』 외 1. 당신 눈으로 보면 나도 소설일까요, 『달려라, 아비』 달려라아비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애란 (창비, 2005년) 상세보기 글 속에 담긴 '나'는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불안하거나 고립되어있다. 그러나 급박하지 않고, 결핍은 화장실의 물때처럼 고만하게 끼어있다. 소설의 배경은 너무나도 가까운 일상이며,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일상의 움직임을 갖지만, 그들의 상념만은 다분히 '소설적' 언어로 펼쳐진다. 감정을 현명하게 풀어내는 때문인지, 색채감 있는 언어를 리듬감 있게 배치한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의 일상은 평범한 시간 특유의 지루함이 없다. 소설은 자잘한 진동의 긴장 속에서-일상도 잘 더듬으면 소설 같아지는 것인지, 소설도 잘만 하면 일상을 그릴 수 있는 것인지 갸웃거리며- 내 손에 들.. 더보기
차라리 가난이었으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신에게는손자가없다김경욱소설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경욱 (창비, 2011년) 상세보기 일상속에서 가난과 궁상은 부지런히 서로의 경계를 오간다. 어릴 적부터 ‘어디가서 기죽지는 말거라’가 중요한 가훈이었던 덕분에 나는 집에 손을 벌릴망정 어지간한 경우에도 돈 없는 티는 내지 않았다. 풍요는 가난을 낭만으로 읽게한다. 찌질하지 않은 가난은 젊음의 상징이 되고, 부도덕한 부에 대한 반항이 되고, 시와 소설의 소재가 됐다. 자취를 하고 나서야 어렴풋히 궁상을 알았다. 찌질함은 다소 이상한 곳에 있었다. 배를 곯는 것보다 BB크림이 떨어지는 게 궁상맞았고, 집에 걸어서 가는 것보다 빨래 세제가 떨어지는 게 궁상맞았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스토리에 기대하는 것은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낯부끄러운 궁핍.. 더보기
울음으로 떨어내기조차 아깝게 아름다운, 『두근두근 내 인생』 두근두근내인생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애란 (창비, 2011년) 상세보기 대체로 책은 술술 넘겨읽는 편인데,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볼 때면 자꾸만 글이 눈을 잡아챘다. 어려운 길이 아니라, 너무 아름다운 길을 만났을 때 기억에 꾹꾹 담아 누르고 싶어서 걸음을 못 옮기는 그런 마음이었다. 프롤로그부터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p7), 첫 장부터 (바람이라 칭할 때, 네 개의 방위가 아닌 천 개의 풍향을 상상하는 것. … 당신이라 부를 때, 눈 덮인 크레바스처럼 깊이를 은닉한 평편함을 헤아리는 것. p11) 책을 꾹꾹 넘겼다. 서러울만큼* 좋았다. 다행히 글은 더 이상 발을 붙잡지 않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고움이 눈에 익어서리라. 『두근두근 내 인생』은 너무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