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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극장

"얼마나 무서웠을까"라는 잊혀졌던 말, 「트로이의 여인들」 2013년 7월 27일(토) 오후 7시 반 게릴라 극장 예술감독 윤광진 극작 에우리피데스 용인대학교 뮤지컬연극학과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현실과 유리돼버릴까 걱정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해본다. 삶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를 공부하다 삶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연극이론을 공부하다가 막상 무대와는 멀어지지 않을까하는 고민들. 지금 와서는 우습도록 성급한 그 물음은 실로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결국 서로 연결돼있었다. 가령, 『예외상태』를 읽고 나면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 소식을 듣게 되고, 『호모사케르』를 읽고 나면 난민수용소에 갇혔던 김인수씨의 인터뷰를 보게 되는 식으로.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는데, 현실에서 그러했듯 책에서도 해답을 구할 수 없었으며, 책에서 그러했듯 현실에서도 나는 무력했다는 것.. 더보기
오레스테스야, 나는 아직 할 말이 있다, 「오레스테스 3부작」 2013년 6월 14일(금) 오후 8시 게릴라 극장 예술감독 이윤택 극작 아이스퀼로스 연희단거리패 한 선생님께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들어 “영웅에 초점 맞춘 비감이 오히려 살해된 개개인의 고통을 쉽게 잊히도록 했다”고 평했을 때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몇 번이고 눈이 붓도록 우는 것으로 그들의 재앙을 공유했다고 믿은 나로서는, 그때 용해돼버린 무엇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가볍게 망각하고 나서야, 곧 말라버릴 따뜻한 눈물의 위험함을 알겠다. 비극 속에도 선의가 있었다고 내뱉는 순간 우리는 비극 자체를 보기를 멈춘다. 그곳에도 화해의 여지가 있지 않았냐고 묻는 순간, 우리는 도저히 봉합되지 않을 상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제 시대는, 삶에 필요.. 더보기
애들 장난이 아닌 바로 우리의 무엇, 「아일랜드」 2013년 2월 12일(화) 오후 8시 게릴라 극장 연출 서지혜 극작 아돌 후가드 최무인, 남동진 오랜 친구와 밤이 짧도록 수다를 떨었다.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연애도 여행도 잡다한 사건들도 허다했을 텐데, 그만 어떤 부정들에 대해 가장 열심히 얘기하고 말았다. 사회 초년생의 적응이란 이런 것이었다. 편법과 융통의 아슬아슬한 경계들을 배우기. 이제 온전히 정당할 수 있는 것은 좁은 자취방 안에서만 가능한 듯, 우리는 모처럼 정성을 다해 분개했다. 그러나 말미에 내린 결론은 참담한 것이었다. 아등바등 잘 끼여 살기란 벌써부터 지치지만, 그렇지 않게 살기란 더욱 난감하다는 사실. 나에게는 그 순간 스치는 얼굴들이 있었는데, 장애물이 있건 말건 직각 반듯이 걸어 다니는 모 만화의 교수님 같은, 진지하거나 .. 더보기
미디어가 말한 메디아, 메디아로 말한 미디어, 「메디아 온 미디어」 2012년 8월 4일(토) 오후 3시 게릴라 극장 연출 김현탁 극작 유리피데스 극단 성북동비둘기 보이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오랜 명제다. 하나의 사건은 프리즘을 지나 포장되거나 폭로되고, 변주되며, 편의에 따라 분노·연민·공감·이질 사이를 오갈 수 있다. 보이는 것은 조종된 가상이다. 이 사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경험되어, 라캉과 지젝, 푸코를 읽지 않아도 쉽게 짐작 가능한 말이 됐다. 그리고 여기 희대의 악녀가 있다. 애인을 위해 동생을 죽인 여자, 남편을 위해 정적을 죽인 여자, 복수를 위해 자식을 죽인 여자. 이 복잡 미묘한 광기는 어떻게 다루기에도 탐탁지 않다. 보이는 어떤 것도 진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떠한 진실인 척’도 하지 않는 것이 그녀를 이야기하는.. 더보기
소통불능자를 연기하는 관객맹신자, 「변두리 극장」 2012년 1월 22일(일) 오후 4시 게릴라극장 연출 오동식 원작 카를 발렌틴 배역 이승헌, 홍민수, 김철영, 배미향 남다르다. 극 10분전부터 공연장 문을 열어놓고 관객을 들인다. “올해 목표가 뭐에요? 다이어트라고?” 묻다가, 어정어정 신문을 펴든다. “13억을 받았대. 안 많아 보여요?” 실수도 천연하다. “거기 좀 비켜줘요. 우리 조명 오퍼(레이터)가 못 올라갔어요.” 이쯤 되면, 거의 ‘관객의 간을 보는’ 수준이다. 웃을 준비가 됐나,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됐나. 아니라면 물론, 끝내 준비시킬 사람들이다. “그, 왜 신문만 읽으면 숙연해지나.” 관객 일동, 웃음. 우연히 티켓을 얻은 부부의 대화를 시작으로, 연극은 ‘변두리극장’의 리허설과 공연 사이사이 단막극을 집어넣었다. 리허설 직전 지휘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