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불능자를 연기하는 관객맹신자, 「변두리 극장」
2012년 1월 22일(일) 오후 4시 게릴라극장 연출 오동식 원작 카를 발렌틴 배역 이승헌, 홍민수, 김철영, 배미향 남다르다. 극 10분전부터 공연장 문을 열어놓고 관객을 들인다. “올해 목표가 뭐에요? 다이어트라고?” 묻다가, 어정어정 신문을 펴든다. “13억을 받았대. 안 많아 보여요?” 실수도 천연하다. “거기 좀 비켜줘요. 우리 조명 오퍼(레이터)가 못 올라갔어요.” 이쯤 되면, 거의 ‘관객의 간을 보는’ 수준이다. 웃을 준비가 됐나,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됐나. 아니라면 물론, 끝내 준비시킬 사람들이다. “그, 왜 신문만 읽으면 숙연해지나.” 관객 일동, 웃음. 우연히 티켓을 얻은 부부의 대화를 시작으로, 연극은 ‘변두리극장’의 리허설과 공연 사이사이 단막극을 집어넣었다. 리허설 직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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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단상1. 「대학살의 신」외
1. 이 혼돈이 균형이다, 연극「대학살의 신」 2012년 1월 1일(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한태숙 원작 야스미나 레자 배역 박지일, 이대연, 서주희, 이연규 학살당한 것은 이야기뿐이다. 사회인답게 애들 싸움질의 뒷수습에 나선 두 부부, 그리고 무례, 시비, 언쟁, 몸싸움……. 이 극에서 번듯한 서사를 찾기보다는, 차라리 폴락 류의 이미지라고 이해하는 편이 낫겠다. 형식을 잃은 말들이 톡톡 튀길때, 단정한 두 부부는 조금씩 망가진다. 이 혼란이 극을 난장판이라는 자리에 붙들어 놓는다. 빠른 대사가 주제를, 겨냥점을, 온도를 계속 바꿔가며 서로를 오간다. 이 기막힌 타이밍과 앙상블이 극의 진짜 관전 포인트다. 핸드폰에서 아프리카로, 다시 술주정으로, 안 좋은 속, 버린 햄스터, 약,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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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절대로 운명이 아닙니다, 「가면과 거울: 오레스테이아 ver.1.3」
2011년 12월 7일(토) 오후 7시 서울대학교 두레문예관 인문대학 공연예술학 협동과정 과거 그것은 운명이었다. 아비가 딸을 죽이고, 아내는 남편을 죽이고, 아들이 어미를 죽이는.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을 다룬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의 오랜 고전을, 극은 젊은 눈동자로 직시하고 있다. 그 젊음이 단순히 현대적 변주에 그쳤다면 분명 따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전의 재현자는, 충실하게 이야기에 뿌리박고 있되, 옛 세계관을 살해하고 다시 태어났다. 죽이고 죽이는 사건 속에서, 그들이 칼을 들고 묻는다. 진짜로 운명인가. 물음은 '이 가문에 아교처럼 엉겨있는 재앙'만큼이나 집요하다. 대각선으로 길이 나 있다. 어둠 속에 도드라진 그 직선은, 배우의 동선이자, 인물간의 거리距離, 운명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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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의 현실극, 그렇다면 내일은 어디에 있는가, 「서울테러」
2011년 12월 31일(토) 오후 4시 대학로 배우세상 소극장 연출 김갑수 원작 정범철 배역 남수현, 한재영, 우수정, 지환 딱 봐도 빈貧한 단칸방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라면을 끓여 먹는다. 5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33세 백수 황장복이다. 7년을 사귄 여자 친구와 막 헤어졌고, 외상값은 밀려있는데다, 전기와 수도, 보일러까지 끊겼다. 사건은 이러한 궁지에서 발아한다. 「서울테러」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88만원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이 극에 질문을 하나 던져보면 어떨까. 현실을 담은 극 「서울테러」는 정말 ‘현실적인 극’인가. 표현의 범주에서라면 극중 먹는 장면을 주목하는 게 좋겠다. 배우들은 열심히 먹는다. 라면부터 짜장면, 짬뽕, 단무지까지. 언제나 그렇듯 궁핍의 가장 대표적인 어휘는 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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