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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고독에 살기: 이적 5집 『고독의 의미』


마음이 계절처럼 반복된다. 봄처럼 설렜다가 이내 터졌다가 여물다 여북하니 떨어지는 것. 늘 이제 그만, 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쉬지 않고 계절을 사는 것은, 누군가 내 마음에 만든 물결 곡선이 언젠가는 그토록 바라던 좌표점에 닿을 것이라 믿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 좌표점의 주소를 타인과의 온전한 겹침 이를테면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 닿지 않아 모자란 거리만큼 우리는 ‘고독’할 것이다. 그런데 타인이 나와 다른 사람인 한, 그 거리는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한 현명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생물학적 고독에 대해 이해를 했으면서도 그대는, 어두운 숲 속에서 눈을 감고 기도한다. 이것이 가설에 불과하기를.”(김소연, 『마음사전』) 유감스럽게도 기도는 언제나 실패할 것이다. 


이적의 5집 「고독의 의미」(2013)가 위치한 자리가 그 곳, 바람과 실패의 교차로다. 인물들은 도대체 헤쳐지지 않는 열망의 시간 위에 존재하며, 동시에 부재와 어긋남과 알 수 없음의 순간 속에 존재한다. 삶의 누군가는 당신 손을 잡고 불안해 물을 것이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곁에 있었는데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는 걸까”(「고독의 의미」), “우리 앞으로도 지금처럼 술 마시며 웃고 노래할 수 있을까”(「이십년이 지난 뒤」). 또 언젠가 당신은 빈 손으로 망연해 서있기도 할 것이다. 눈을 떴더니 네가 없어서(「숨바꼭질」),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를 않아서(「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 부재가 이렇게 간절할 거라고 이전엔 알지 못해서(「비포 선라이즈」). 타인에 항구하고 완전하게 머무르고 싶다는 기도는 늘상 실패에 대한 불안, 혹은 실패와 맞닿아있다.


이것은 너무 필연적이어서, 우리는 마치 기도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만 같아 보인다. 그래서 혹자는 애초부터 그런 바람없이 사는 게 현명하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본래 인간은 서로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정확하게 사랑할 수도 없으니, 더는 보채지 말자고. 그러나 이적은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성실하게도, 그는 외로움을 손쉽게 해결하려들지 않는다. 우리는 「병」에서 어떤 저항을 읽을 수 있는데, 비약이 될지라도 이 곡의 욕망을 저 기도에 빗대보는 것은 흥미롭다. “사람들은 내게 다 병자라 하네/ (…) 고칠 수는 없으니 깊이 숨기고/ 뻔히 드러내는 건 추하다 하네.” 뻔한 실패를 감내하는 기도는 자해와 같아서 분명 마음의 병이다. 그런데,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은 이런 대목. “도대체 왜 내 상상을 항상 감춰야 한다는 걸까.” 이적은 지겹게 삶을 갉아먹는 이 욕망을 기어이 긍정하고야 만다. 왜일까.


어쩌면 「누가 있나요」의 이미지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겠다. “이 넓은 세상 위를 하루하루/ 비바람을 맞고 걸어요/ 혼자서 가는 걸까 외쳐봐요/ 누가 있나요” 후렴구의 이 반복되는 물음 덕분에 곡은 기도처럼 들린다. “깨어나지 않기를 바래보다 눈물 흘려요”, “견딜 수가 없어 주저 않아요” 같은 ‘멈춰 선’ 가사를 끌고 노래에 걸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후렴이다. 설령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가 아무도 없더라도, 이 실패가 약속된 기도는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었던가. 라깡이 “사랑은 환상이다”라고 말했을 때의 교훈은, 아마도 사랑이 실재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사실보다, 사랑이 환상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기도는 실패하고 우리는 언제나 고독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의미를 갖는다. 사랑 아닌 사랑의 환상에 기대어, 일치가 아닌 어긋난 겹침의 형태로, 모자란 거리를 고독으로 채워서만, 나는 당신과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