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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토론은 계속돼야 한다 빅브라더와 판옵티콘의 시대가 본격 도래하는 것일까. 국회의장께서 뜬금없이 국가비상사태를 외치시니, 진짜로 나라 돌아가는 사태가 참 비상이구나 싶은 요즘이다. 모호하고 초법적인 저 법의 불안한 칼날은 거리와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날아들기 십상이라서, 아, 악법은 가깝고, 쉿, 말은 무서워라. 이제 우리는 기본권과 시민권, 국가주의와 전체주의, 감시메커니즘과 생명정치에 관한 글들을 다시 꺼내 읽어야만 할 것이다. (판사님, 이 글은 저희 집 토끼가 쓰고 있습니다.) 뭐라 입을 열기도 무서운 시절이 돼버렸으니, 저 무소불위의 법에 대해 말하는 대신 차라리 지난 192시간 27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할까. 저 8일 남짓의 시간은 그야말로 ‘끊이지 않는 말들의 시간’이었다. 기실 우리가 얼마나 말다운 .. 더보기
편지: 지옥을 살아가는 방법 꽤 어렸을 적부터, 언니는 어른이 되면 한국을 떠나버릴 거라고 말하곤 했지? 나는 그 말에 괜히 서러워져서 울었던 기억이 나.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야말로 때를 앞선 통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네. 오늘 여기, 정치에는 논리가 없고, 사람들은 혐오를 함부로 말하지. 얼마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는 사회의 상식과 예의가 실종됐다고, 사고와 언어가 얄팍해졌다고 통탄했었나. 줄줄이 딸려 나오는 문제들 중 무엇부터 바뀌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가, 다시 술을 마셨던가. 언니, 정말로 이곳은 지옥인걸까?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밖엔 없는 건가? 나는 어릴 때처럼 자꾸만 서러워졌고, 이번엔 우는 대신 지옥에 관한 글들을 몇 편 읽었어. 누군가는 지옥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 더보기
영웅, 전설 한때 그들은 영웅이었다. 배가 가라앉은 날, 그들은 그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계를 놓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떤 체계도 지원도 없던 그곳, 오직 혼란과 구설만 있던 그곳에서, 그들은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류에 몸을 던졌다. 혹자들이 그때 그들을 일러 영웅이라고도 성인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아니, 정말 그렇게 말했었나. 만일 그렇다면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저 민간잠수부들에게 돌아온 것은 박수와 월계관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후유증을 얻었다. 당시의 무리한 작업 때문에 디스크에 걸리고 뼈가 썩어 들어갔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으며, 시시때때로 검은 물의 악몽이 밀려왔지만 어떤 심리치료도 지원받지 못했다. 그뿐인가. 그.. 더보기
말의 빛 하느님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으니, 천지창조의 날에 말씀은 곧 현상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그것과 같지 않아서, 말과 사태가 비끌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게다가 오늘날 이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이 아니고, “만지긴 했”지만 성추행은 아니며, ‘창조 경제’에는 창조가 없고, ‘진짜 사나이’에는 진짜가 없다. 분야와 계층을 막론하고 말이 이렇게 가볍다. 이를 어쩌나, 로고스의 신성함이 자꾸만 그 빛을 잃어만 가니. 허나 너무 괴로워들 마시라. 저들은 이 번잡한 시대에 어울리는 말하기를 몸소 수행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그 분’의 말하기야 하나의 화법을 수립할 정도로 유명해 더 언급할 것이 없지만, 어느 당 대표의 근래 발언들 역.. 더보기
쓰레기라는 숭고한 대상 어떤 높은 분의 말만큼 창조가 단순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쓰레기를 창조해낼 수는 있다. 내가 “쓰레기가 있으라” 하심에 쓰레기가 있으니, 봉지에 넣고 묶어 추운 날 슬리퍼를 끌고 아파트 쓰레기 수거함에 투척해야 하는 제거의 노고에 비하면, 이 창조는 얼마나 손쉬운 것인가. 쓰레기는 ‘마술적’으로 탄생한다. 사물은 당신이 그것의 불필요함을 천명하는 그 순간에 쓰레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쓰레기의 창조 이면에는 더 정확하고 주목할 만한 진실이 적혀있다. 실은 “모든 창조가 쓰레기를 수반한다.” 창조는 목적과 그 목적을 위한 설계도를 전제하기 때문에, 창조의 과정에서는 언제나 남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설계도의 어느 자리에도 명시되어있지 않은 잉여, 그것이 바로 쓰레기가 아닌가. 지금 당장.. 더보기
아버지는 답하지 않았다 시간은 속수무책이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가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애도하고, 남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한 죄책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을 양 손에 들고, 그런데 나는 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일까. 당장 알아야 하는 것들과 급히 행해야 하는 것들은 늘 책 밖에 있었는데. 언젠가 레닌은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 그 말에 기대 보려다가도, 이것은 손쉬운 현실도피에 대한 알량한 자기변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오랫동안 갸웃거렸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욥기」를 읽었다. 어느 누구보다 신실한 하느님의 자식이었던 욥은 ‘아무런 이유 없.. 더보기
분노하라, 그러나 정확하게 1. 이미, 분노사회 당신은 분명 분노했으리라.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들에, 자신의 무력함에, 윤리가 부재한 사회에, 그럼에도 이 모양인 정치에 대해. 그도 아니라면, 어쩌면 연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도무지 날 뽑지 않는 면접관이라던가, 끊임없이 날 괴롭히는 상사 때문에 분노했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팍팍하다. 기민한 누군가는 이미 이곳을 ‘분노사회’라고 명명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말대로 “나와 세계의 관계가 부조화하다는 느낌”이, 그리하여 “삶이란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기분”이 분노를 낳는다면, 세상에, 오늘날 분노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연극은 그러한 삶에서 제 표정을 배웠다. 5‧18민주화항쟁, 후쿠시마 원전사고, 위안부 문제 등 소재 자체로 시대의 공분을 다루는 작품은 올해도 .. 더보기
지금, 『대학신문』입니다. 올해 초 방한한 극작가 하타사와 세이고의 회고는 기억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대지진 이후, 그는 변변찮은 시설과 인력 속에서, 무엇보다도 그 엄청난 무력감 속에서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지금 연극이란 말인가.” 나는 이것과 비슷한 원초의 물음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신문사 생활 중 우리를 지치게 만든 것은 어쩌면 과도한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2011년의 힘듦은 조금 더 맥없는 것으로, 고질적인 기자 부족이나 구독률에 대한 회의, 그야말로 정체된 정체성에 대한 물음 등이 그 이유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노심초사로 얽어낸 텍스트가 소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면, 끝내 우리는 자문해야 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왜 지금 『대학신문』이란 말인가. 나는 그때.. 더보기
“공간예술과 시간예술의 구분은 합당한가?”: 베르그송 철학으로 딴죽 걸기(1/4) 예술 장르의 분류, 공간예술과 시간예술 예술에는 행복한 결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성공적인 강간만이 있을 뿐이다. Langer, 『Problems of Art』 마치 인간의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자유로운 ‘예술’에서조차 우리는 분류를 한다.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가려, 산재한 것들을 구획하고 이름을 단다. 먼저 이것을 물어야겠다. 왜 예술에 장르를 만들고, 나누는가. 현명한 미학자 테오도르 생크가 입을 연다. “분류란 예술가를 특정한 재료나 기술에 한정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예술의 개념을 지적 능력의 한계 안으로 옮겨 놓는 것을 돕기 위해 있다.” 그렇다. 각개의 예술 작품보다 먼저 태어난 분류는 없다. 우리는 예술의 탄생 이후에야 ‘예술을 위해’ 분류한다. 그러니까 .. 더보기
맘(MOM)창작 오페라 쇼케이스에 대한 소고, "천진할 것인가, 전진할 것인가" 성실한 기획력이라고. 국립오페라단의 맘(MOM)창작 오페라 쇼케이스 「셔블 발긔 다래」(12월 2일 오후 7시, 국립예술단체연습동 오페라스튜디오)에 대한 감상은 프로젝트에 대한 심상으로부터 시작했다. 신인 창작자를 발굴해 「아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등 양질의 작품을 매년 배출해 낸 여력과, 쇼케이스까지 준비해 관객 반응을 듣는 성의는 확실히 보기 드물다. 소위 한국적이라는 공연에서 흔히 나타나던 동서양의 투박한 덧댐도 거의 없어 꽤 즐거운 중, 그런데도 못내 못마땅한 것은 왜일까. 맘(MOM-My Opera Movement)프로젝트는 선량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연예술의 안이함을 천연하게 보여준다. 부박한 영문축약은 차치하고서라도, ‘엄마 마음을 오페라에 담아 인류애를 실천하는 예술운동’이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