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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그녀와 함께 도달불능점까지 손을, 『그녀에게 말하다』,『진심의 탐닉』

그녀에게말하다김혜리가만난사람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김혜리 (씨네21,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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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의탐닉김혜리가만난크리에이티브리더22인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김혜리 (씨네21북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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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도 비평도 아닌 리뷰라는 글의 얄궂은 속성을 고민할 때, 모범답안이 되어 준 것은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기사였다. 저널로서의 균형 감각이 탁월한 그의 글은 쉽지만 지적이고, 지적이지만 겸손하며, 겸손하지만 단순히 ‘뉴스거리들의 치다꺼리’를 하지 않는, 옹이가 굳게 박힌 것이었다. 『그녀에게 말하다(그녀)』, 『진심의 탐닉(진심)』은 그런 그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한 장 남짓의 전문前文과 40여개의 문답으로 구성된 책은 분량 상 전작 『영화야 미안해』보다 필력을 만끽할 부분이 적은 셈이다. 그러나 “내일도 밤새 짐승처럼 어슬렁거리며 시를 쓰다가 새벽녘에야 식물의 고요한 날숨을 토하며 쪽잠을 청할 것(『진심』, p269)”이라고 시인의 밤을 상상할 때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유려하고, “예술은 인어공주의 숙명을 지녔다. 예술은 돌려 말해야 한다. 욕망과 사랑을 대놓고 발설하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태생이 벙어리 냉가슴일 수밖에 없는 예술을 통역하고 위무하기 위해 비평가가 존재한다(『진심』, p146)”고 사유할 때 그는 쾌하게 현명하다.

특히 구석구석 어디서 캐왔는지 모를 생경한 단어들이 위압감이 아닌, 말의 빛만으로도-그러나 찾아보면 더 좋은-뻐근한 충실감을 준다는 장점은 오랜 기자 경력의 굳은살인듯하다. “막강한 상상력과 고강한 농담(『그녀』, p16)”이라거나 “가느다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길가의 고춧잎들이 찬 기운에 풀이 죽어 수굿하다(『그녀』, p37)”같은 부분이 그런 예다.

덩치가 큰 대부분의 분량은 문체보다는 김혜리 기자가 가진 인터뷰어로서의 미덕으로 채워있다. 방대한 지식과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 성실성 등이 그 덕이다. 인터뷰이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손에 쥔 이 넉넉한 인터뷰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 ‘진실을 탐닉’해낸다. 대체로 고르지만 특히 영화배우를 만날 때는 묘한 자신감이나 흥분이 흑백의 책 너머로 비어져 나온다. (「이병헌」, 「정우성」등)

펼쳐내는 방법도 적확하다. 철학자 편에는 벤야민과 디오게네스를(「진중권」), 시인 편에는 시를(「취한 말(語)들의 시간/김경주」) 글 곳곳이 집어넣거나, 소소한 일화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정수를 기어코 끄집어낸다. 기자는 사진 촬영동안 맡은 김태호 PD의 배낭 무게를 가늠하며 “누군가에게 ‘재미’란 그렇게 지구만큼 거대하고 무거운 것이었다(『진심』, p75)”고 회고하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처럼 높낮이 없는 전영혁 DJ의 오프닝과 끝인사 사이에 “오직 강 같은 음악의 은총이 넘친다(『그녀』, p197)”고 깨닫는다.

이 잘 닦인 글들은 질투와 자괴감으로 가슴이 뻐근해지기보다 마음 놓고 감탄하기 편하다. 아마 ‘살이 만져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글의 몸피는 언제나 열정적인 팬이자, 호기심 많은 기자, 소통을 갈구하는 한 인간의 온기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이런 식이다.

이윽고 편히 졸기를 포기한 그녀는 MP3를 귀에 꽂고, 고교 입시용 학습지를 꺼내 들었다. 소녀의 왼손은
노트 위에서 보이지 않는 네 줄의 현을 누르며 춤추었다. (중략) 20시간 뒤 장한나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에 나는 전날의 여학생이 뜬금없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무슨 곡을 듣고 있었나요? 몇 시간 연습하면
안심하나요? 첼로를 미워한 적 있나요? 오직 그녀만이 내 미진한 인터뷰를 완성시켜줄 것 같았다.(『진
심』, p463)

고기를 잡아 회 치는 시늉을 하는 그의 두툼한 손을 보면서 나야말로 이 불가사의한 배우를 냅다 건져 올
리고 싶어 속이 탔다. 내가 지닌 것이 문장이 아니라 덫이나 그물이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세 번쯤
혀를 찼다. (『그녀』, p99)

『그녀』가 전반적으로 고르게 쓴 편이라면, 『진심』은 예상치 못한 진담에 감동받거나, 당황하거나하는 표정을 더욱 솔직하게 적어놓은 편이다. 후자가 수식을 한 번 더 깎아내고 그 빈자리엔 속내를 담아 더 생생하다. (단, 『진심』은 후반으로 갈수록 비문이나 오타가 심심찮게 눈에 잡혀 아쉽다.) 이 진득한 작업들을 거치며 기자의 속내음은 어땠을까. 대부분 글에 담아있지만 근래 밝힌 흥미로운 고백이 있다.

기자라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반면 기자이기에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종류의 인터뷰가 있다. 16년
간 매주 영화잡지를 만들며 배우를 만났으나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고 이제야 고백하련다.
김지하 시인의 시구를 막무가내로 인용하자면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라고
나 할까? 우상인 동시에 무당인, 지긋지긋하게 예민한 동시에 폭력적으로 대담한 이 희귀한 ‘종족’에게,
특별한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번번이 이족의 언어로 눈치 없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능하다면
아바타의 몸이라도 빌려 입고 배우들의 나라에 잠입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특집기사 「고현정, 이미연
을 만나러 가다」, 2011년 4월 27일 『씨네21』)

『영화야 미안해』 서문이 담아냈고(“비평은 저주받은 님프 에코와 비슷한 운명의 주인입니다.(중략) 영화평을 쓰는 우리의 대부분은 좌절한 창작자이거나 좌절한 관객입니다”), 때로는 인터뷰 도중에도 불쑥 터져 나왔듯(「신형철」, 앞선 서문에 담긴 비평가에 대한 자학적 정체성을 그녀가 이 인터뷰를 통해 위로받았을 것을 거의 확신한다) 김혜리 기자는 이러한 특유의 자괴감을 갖고 있는데, 그 자탄自歎은 넘어지지 않고 딱 발판 삼을 만한 높이의 것이다. 인터뷰어로서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도 끝끝내 괴로워 할 그녀는, 그러나 언제고 “도달불능점까지 손을 뻗을 것”이다. 더불어, 그녀가 손 내민 자리를 언제고 더듬는 것은 영화와 미문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괴로울 만큼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