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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독서단상1. 『달려라, 아비』 외


1. 당신 눈으로 보면 나도 소설일까요, 『달려라, 아비』
 

달려라아비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애란 (창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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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담긴 '나'는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불안하거나 고립되어있다. 그러나 급박하지 않고, 결핍은 화장실의 물때처럼 고만하게 끼어있다. 소설의 배경은 너무나도 가까운 일상이며,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일상의 움직임을 갖지만, 그들의 상념만은 다분히 '소설적' 언어로 펼쳐진다. 감정을 현명하게 풀어내는 때문인지, 색채감 있는 언어를 리듬감 있게 배치한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의 일상은 평범한 시간 특유의 지루함이 없다. 소설은 자잘한 진동의 긴장 속에서-일상도 잘 더듬으면 소설 같아지는 것인지, 소설도 잘만 하면 일상을 그릴 수 있는 것인지 갸웃거리며- 내 손에 들어온 시간을 이리저리 살펴보게 한다. 이 결핍까지 고스란히.


2. 일단 그 칼날을 마음 깊이 받겠습니다만, 『B급 좌파』『나는 왜 불온한가』
 

B급좌파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규항 (야간비행,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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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왜불온한가B급좌파김규항,진보의거처를둔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김규항 (돌베개,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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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불편하다. 성향이나 시비의 문제가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격한 부분에 움찔하는, 그래서 반발심에 가깝다. 특히 그의 글은 나도 쉽게 납득하는 악(아마 칼럼을 읽지도 않을 부류의)에게 보다,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있는 지식인과 중산층에 가장 가까이 칼날을 디밀고 있다. 광주에 대해 잊어가는 우리를 "도살자의 충실한 공범"이라 스스럼없이 천명하는 그의 글에 내 스스로 가책이 들어서인지, 과하다 싶어서인지 변명을 해주고 싶다만. 이 세상에 내가 모르는 상처들은 왜 이리 깊고 많은 건가. 그러나 분명 언젠간 그에게 ‘분노의 유보’를 요청하고 싶다. 정말 그것만으로 분노해도 되는 걸까, 그런 식으로 분노해도 되는 걸까. (예를 들면 '지적 세계와 그들만의 언어'는 정말 '서푼짜리 허영심' 따위 인가?) 그는 내가 단단히 준비만 돼 있다면 잠깐은 걸음을 멈출 것도 같다. 자신의 오차마저 누구보다 먼저 잡아내고, 스스로 "방구석에 앉아 세상을 재단하는 부도덕을 깔고 있다"고 냉소할 만큼 솔직하며 냉정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는 뒷부분에 쳐 내도 좋았을법한 부분을 제외하면 『나는 왜 불온한가』 『B급 좌파』보다 정렬됐다. 2011년 하반기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책 두 권의 리뷰를 이정도로 미뤄두고, 나는 세 번째 이야기를 들을 채비 중이다.


3. 거짓말같이 그려놓은 감정의 포물선이, 『모르는 여인들』『악기들의 도서관』
 

모르는여인들신경숙소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신경숙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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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도서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중혁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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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다. 거짓말이 소설의 본질까지야 아니겠지만, 근래 손에 잡은 두 책은 '거짓말 같은' 얼굴로 걸어왔다. 언어장애와 외계인손증후군, 고양이 투성이인 방이나 매뉴얼 잡지에 악기 소리 주크박스, 막 보는 면접까지. 그 능청스러운 얼굴이 독자를 부드럽게 밀치고 들어오는 힘을 보편적 감정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변화 곡선의 시작점과 가파름은 전연 다르다. 전자는 급속한 하강곡선이다. 내적·외적인 결핍이 함께 상실점을 찍다가 더 나빠질 것도 없는 마음으로 포물의 끄트머리가 살짝 고개를 든다. 후자는 얕게나마 아래로부터 위로, 인물들의 변화와 공존이 더없이 건강하다. 판이한 이 두 책이 문득 묶여 읽힌 것은, 실마리를 '관계'에서 찾기 때문이리라. 상실된 관계가 가까스로 회복의 기미를 찾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타인과 조심스럽게 조우할 때 인생 곡선은 위를 본다. 그 표정이 바로 진심, 혹은 진실의 얼굴이다.


4. 이 상실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을까, 『강물이 될 때까지』

강물이될때까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신경숙 (문학동네,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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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초기 소설은 지금보다 문체는 아름답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다. 연이은 독백이 겹겹이 얽히거나, 수시로 치환되고 흘러가는 이미지들을 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상실감만큼은 분명하게 수식들을 헤치고 나온다. 시대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기실 인간의, 주로 사랑에 관련된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그때는 사람들을 이리 진지하고 우수에 차게 만들었을까. 이때만큼 절박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신경숙 소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정서는 다분히 일상 전체를 침체시키는 상실과 비애감인 듯 한데, 그것이 어쩐지 설다. 절박 속에서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한 줌을 이 소설이 가지고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그 절박이나, 한 줌이 있는가. 세상에서 모든 상실된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책을 읽고, 이제 나와 내 동기들이 우리 시대의 보편 감성을 찾아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설핏 스쳤다.


5. 잡동사니가 가득 차올라 비트가 되어, 『펭귄뉴스』

펭귄뉴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중혁 (문학과지성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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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벽이나 애착은 대체로 스스로에게는 따뜻한 삶의 동력이면서, 밖에서 보기엔 어딘가 구차한 구석이 있곤 하다. 뜨악할 만치 소소한 것들을 중요 키워드에 상위 링크시킨 이 책은 작가 특유의 색인, 잡동사니나 마이너한 것들에 대한 따뜻한 집착을 느끼기에 좋다. 그리고 그것은 건강한 시선의 원류다. "밥 알갱이 사이사이에는 역시 공기가 많이 들어 있으니까", "하유, 힘들어요, 빚더미에 올라앉았어요. 그래요, 그럼 내리시구랴" 같이 천연한 표정으로 건네는 긍정을 만나면, 이내 내 삶에도 뭔가 다른, 어긋난 것들이 들어와도 괜찮을 것만 같고, 그럴 때만이 우리는 관습의 유비쿼터스에서 나와 심장의 비트를 즐기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