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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삶의 농담에 치인 자들에 대한 위로, 『농담』


농담(세계문학전집29)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지은이 밀란 쿤데라 (민음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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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가볍게 던진 농담의 대가로 사회에서 매장당한 루드빅의 복수담이다. 탄광에 보내진 뒤 15년 만에 고향에 찾은 그는 사랑했던 여인, 별 볼일 없어진 친구, 그를 버린 옛 동료 등을 만난다. 그의 동선과 기억을 통해 엮여가는 소설 속 거의 모든 인물은 무엇엔가 실패한 인생들이다. 시대를 자신들의 손으로 열고자 했던 열기가 환상이 됐고, 진정한 사랑은 물거품이 되며, 평생 믿어온 가치는 멸시 당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크고 작은 오차가, 진실이라 생각됐던 것들이 기실 그렇지 않았을 때의 낙차가 있다. 이 소설은 역사, 혹은 시간이 던진 농담에 얻어맞은 피해자들의 조서다.

농담이란 무엇인가. 이는 대개 진실을 알고 있는 자가 그렇지 않는 자를 희롱(弄)하는 말(談)이다. 거대한 세월이 알고 있는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리는 도통 순간의 진의를 구별할 수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되묻는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p391) 돌아오는 답이 아프다.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완전히 무화시켜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p391) 소설은 루드빅의 재판이나, 알렉세이의 일화를 통해 이념 속 인간의 나약함을 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지 않다. 더욱 씁쓸하도록, 시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더러는 삶 그 자체가 철회 불가능한 농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상실된 삶을 늘어놓는 작가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글의 후반은 이렇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은 악惡이 먼저 손을 내민다. 나 이제 변했다고. 복수할 곳을 잃은 루드빅은 그제야 자신이 "서글프고 가슴 저미는 초라함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루드빅과, 시대가 지나친 민속음악을 하는 야로슬라브. "운명이 죽음보다 먼저 찾아온 이들"이 삶에 대한 위로로 가득한 마지막 연주를 건낸다. 소설이 다루는 역사의 굵은 필체에 비해 그 얼마나 소소하며 인간적인가! 이 마지막 장면은 비록 농담처럼 시시껄렁할지라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순기능처럼 위로를 준다. 그렇다. 잠깐이나마, 농담은 삶의 회한마저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