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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독서단상5. 『제리』 외


1. 이 빌어먹을 외로움 속에서, 제리, 날 그냥 가만히 안아줄래, 『제리』
 

제리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혜나 (민음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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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외로워 본 적이 있다. 아니, 외롭다는 것이 대개 이런 식일 것이다.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이런 전언.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생각하고 이해해… 아니야, 다 괜찮으니까, 지금은 “제발, 가만히 안고 있어줘.” 언젠가 이 소설에 대한 평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섹스와 음주에 탐닉하는 이 한심한 20대에게,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가 얼마나 공감할 지 모르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게 물어보면 “글쎄.” 이렇게 답해야겠다. 진짜 루저건, 가끔씩 루저가 되건, 엄살만 피우는 것 같은 非루저건,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경우에는 삶에의 열패감, 그 루저의 기분을 알고 있다. 왜 그러고 살아? 라고 물어보면, 글쎄, 밖에 할 말이 없는 그런 삶이 지금 20대를 묶는다. 이 부유함은 절박하다. 아무말 없이 가만히 안아달라는 것은, 나 조차도 나를 진심으로 애정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요구다. 오로지 내가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구하는 위로와 응원이다. 자꾸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그 시간이 공감가서, 어떤 불편한 묘사들은 결코 불편하지 않았다.

 

 

2.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좀비들』

 

좀비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중혁 (창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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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삶의 최대치를 10이라고 해보자. 나는 오늘 아침 4정도. 사실, 5이거나 3이어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시 6이거나 2여도. 다시, 다시. 이 정도 진폭은 아주,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니 0, 즉 죽는다,는 것은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이 괴괴한(음악을 좋아하는 좀비라니, 음악을 좋아하는 좀비라니!) 소설은 -1, -2 가 있으면 또 어떠한가, 하고 갸웃거린다. 인물들은 -1인 좀비와 대화를 할 수도, -2만큼 너덜해진 좀비를 껴안고 울 수도 없다. 종내 실패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작가는 단지 ‘ ’(無)가 아닌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소설 속의 좀비들에게는 독자들이 기대했을 어떠한 의미도(가령 삶과 죽음의 장렬한 화해라던가) 없지만, 불타는 산을 등진 채 좀비들을 몰고 가는 장면은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사람도 좀비도 안테나에 잡힌다. 그저 있다, 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 외의 고저에는 데면하기에, 그 속에서 삶의 충격들은 흡수되어 무난해진다.

그는 유쾌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책을 펴면, 기억과 달리, 난처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꾹꾹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 책은 특히나 가라앉아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가 유쾌한 글을 쓴 사람이라고 생각될 것 같다. 어떤 능청맞은 순간들이 있다. 다쳤으면서, 벙싯 웃으면서, 상처의 바깥 근방을 득득 긁고 있는 그런 유머. 어쩌면 ‘ ’가 아니기 때문에 -10이건 10이건 그에게는 쾌와 불쾌의 낙차가 그렇게 새삼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대책없이 행복하다. 이런, 나도 더불어 대책없어졌다.

 

 

3. 도대체 이 인간들을 어찌할 것인가, 『천재토끼 차상문』

 

천재토끼차상문한토끼영장류의기묘한이야기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남일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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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것인가. 도대체 이 지구별을 어찌할 것인가”(p297)를 토로하는 존재로 천재 토끼의 선택은 얼마나 현명한가. 책은 천재 수학자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가 홀로 산업문명 전체를 상대로 전개한 전쟁, 즉 유나바머 사건을 토대로, 한국의 분단과 사상의 자유부터, 종차별주의의 반대, 페미니즘의 편린까지 주제를 얽었다. 소설은 지나치리만큼 방대하고 사회적이다. 그런데, 토끼다. 어린 토끼 귓등의 솜털이 자꾸 어른거려, 인물은 훌륭하게 역사 혹은 인류에게서 빠져나온다. 선량하지만 방관적이고, 유순하지만 비판적인 이 토끼는, 철저하게 제 3자의 지점에서 우리를 본다. 소설은 인간 외부의 종을 출연시켜 사회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시선을 창조해냈다. 

 


4. 이 끔찍함이 끝날 리가 있나, 『재와 빨강』

 

재와빨강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편혜영 (창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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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단편들을 몇 번이고 뒤적거리며 보지 못한 장편을 궁금해할 때, 이번엔 다를 것을 의심치 않았다. 도대체가 이렇게 끔찍한 것을 집중해 내는 소설은 길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편마저 지독하게, ‘편혜영스럽다.’ 인물이 서서히 바닥으로 빠져들고, 헤어나오지 못한 채로, 끝까지, 지금까지 그 수렁에 있는 것이 딱 작가 특유의 것이다.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스스로 냄새를 풍기는 세계가 된” 인물은 박한 희망에 매달린 채, 아니 때로는 매달렸는지조차 모르게 그저 살아간다. 이런 유형의 삶은, 그야말로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시구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한 인생이라면, 쓰레기더미가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목적이 아닌 수단의 삶이다. 그곳으로 우리가 삶을 투신하는 기미가 보이는 한, 그녀의 종말론은 쉽게 끝날리가 없다.

 


5. 텅 비워냄으로써 진실을 서둘러 소유하지 않는, 『기호의 제국』

 

기호의제국
카테고리 역사/문화 > 동양사
지은이 롤랑 바르트 (민음사,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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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제국은 그 독창성과 심미성 덕분에, (자칫 의미를 놓치기 일쑤였지만) 이를 더듬는 작업은 아주 흥미로운 것이다. 주된 발상은 텅 비어있다,는 것. 기호가 어떻게 기의를 버리고 자신을 비워낼 수 있는가. 그가 사례로 드는 것은 일본의 선물 포장, 분라쿠, 인사, 하이쿠 같은 것들이다. 이런 기표들은 은밀하지도 내밀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포장은 아주 정교하며, 분라쿠 배우는 (서양의 인형극 배우와 달리) 얼굴을 노출시키고, 인사는 과장된 형식 하에 놓여있으며, 하이쿠는 모호한 구석이 없다. 그러나, 그 명확한 기표에서 내면을 더듬으려 시도하면 말이 달라진다. 그 포장들을 열어보자. 빈 상자와 무표정, 행간을 아무리 더듬어도 그 속에 진의는 없다. 이 모든 글쓰기에서는 “無가 씌어질 뿐이다.”

 

이 텅 비어있음이 도대체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몽테뉴가 말하고, 바르트가 동의했듯 세상은 사물에 대한 과도한 주석들, ‘해석의 해석’이 넘쳐난다. 기의는 참 진리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진리의 어떤 의미일 뿐이다. 무의미가 아닌 의미가 없는 것인 이 독특한 현상들은, 기의를 비워냄으로써 기표 그 자체로 진리가 된다. 가령, 배우가 어떤 여성을 모방한다면 그 기의는 특정 여성일 뿐이다. 일본의 가부키는 극도의 형식성에 따라, 여성이라는 기표를 형성함으로 ‘여성’ 그 자체를 보여준다. 보라, 이제 선물은 ‘어떤 선물’이 아니라, 선물 그 자체가 된다. “의식적이고 임의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준비하여 진실을 서둘러 소유하지 않는”(Vincent B. Leitch) 이 곳, 이 곳은 진정한 기호의 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