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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독서단상6.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외

 

1. 갈피를 못 잡게 하는 입체적 구성의 즐거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일곱개의고양이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최제훈 (자음과모음,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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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거나 위험한 표현일지라도, 전무후무하다고 말해야겠다.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 정도가 아니다. 읽고 있던 텍스트가 누군가의 소설이 되고, 그 서사는 다시 한 번 누군가의 발화 내용이 된다. 수많은 겹 속에서 독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던 위치를 잊는다. 이것은, 무수한 평면과 평면이 입체로 관계 맺는, 일종의 페이퍼 아트와 같다. 자꾸만 끊어지는 데도 코를 박게 하는 미스터리의 흡인력은 어지간하다. 전작처럼- 전작보다 더욱- 얇은 할 말이 오로지 아쉽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어떤 주제를 끌어낼 것도 없다. 소설의 담론은 에셔의 작품처럼 내적 서사보다 외적 기법에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한다면 이 파편들은 박하지만, 그것들이 조직해 낸 실험은 메타소설의 영역에 가닿으며 더없이 흥미롭다.


 

2. 인간 게바라의 메시지, 『체 게바라 평전』

 

체게바라평전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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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대한 분량의 평전은 사실 꽤나 산만하다. 저자의 깊은 애정 덕분에, 인간 게바라가 아주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있지만, 그런 만큼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뒤엉켜있다. 물론 이런 난삽함 속에서도 체의 삶은 아주 명징하고 뜨거운 메시지가 되어 읽힌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을 부자유스럽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배격, 행동 뿐 아니라 왜 행동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앎에 대한 태도, 그리고 민중에 대한 믿음과 인간을 향한 존중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건조하게 평전의 역할을 다했어야만했던 부분들이 아쉽다. 바티스타의 대응으로 인한 쿠바-미국 간 외교관계 변화나 볼리비아에서의 실패 등은 비판적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또, 이데올로기가 없다는 것이 당시 반분된 세계의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었는지,라던가 생산물 차등보상에 관한 샤를르 베틀랭과의 흥미로운 논쟁은 제시된 정도에 그쳤다.

 

기대않았던 뜻밖의 위로 하나를 기록해둔다. 간신히 반수를 채운 총회라던가 한산했던 집회, 늘 허덕이는 많은 조직들. 사람이 없다는 것은 오랫동안 얼마나 지겨운 말이었나. 바티스타 군대 앞의 그들은 수십에 불과했다. “우리는 열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쿠바의 독립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남은 수이다.” 그 말처럼, 현재의 상황들 역시 그렇게 수세에 몰린 것은 아니리라.

 


3. 소설, 여전하게도, 『고등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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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웅진출판주식회사,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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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게는 와인에 비유해보자. 어떤 것들은 마시기엔 시기가 지났다,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그 중 몇몇은 아직까지 여전한 특유의 맛이 좋을 테고, 또 몇몇은 첫 맛과는 다른 즐거움으로 열리기도 할 것이다. 두 소설이 그렇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대한 일반의 헌사는 자살 도우미라는 설정에 대한 ‘허구적 매력’에 맞춰졌지만, 근래 소설에 비견하자면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글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어떤 세련된 이질성이 있다. 아무것에도 결박되지 않은, 삶도 죽음도 애상과 허무위에 흘리는 감성. 커피와 담배, 자동차와 비, 몇 점의 회화에 관한 이미지. 재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는 아닌 그 단정함이 기껍다.

 

『고등어』의 사랑과 상념은 ‘쿨’하지 않다. 나는 자칫하면 구절하다고 함부로 말해버릴 뻔한, 이 감정을 배태한 시대를 모른다. 그러나 소설을 읽을수록 더듬고 싶은 것이 선명히 드러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감수성. “세상에, 스물한두 살의 나이에, 강가에 나가서 강물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조차 죄책감을 가졌던 세대가 또 있을까?”(p186) 그 빈자리를 더듬는 작업은 우리 세대가 가진 상실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으로 전이된다. 소설에서 여러 번 모티브로 쓰인 나카시마 아츠시의 「산월기」 구절이 멈춰 설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