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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철학나무에 부푼 시: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003

오늘날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실업했다. 거대담론의 무망함을 인정하면서, 절대정신의 불가능성을 시인하면서, 이제 철학자들은 헤겔의 후계자가 아니라 헤겔의 비판자로서만 연명할 것이다. 확고한 것은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앎(sophia)에 대한 사랑(philo-)을 표방했던 저 일군의 무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어쩌면 난감한 얼굴로 이렇게 고백할지도.

 

 “언제부터인가 내 삶이 엉터리라는 것뿐만 아니라/ 너의 삶이 엉터리라는 것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너라도 이 경계를 넘어가주었으면,/ 그래서 적어도 도달해야 할 무엇이 있다는, 혹은 누군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어떤 존재증명과 같은 것이 이루어지길…… 사람들은 왜 내겐 들을 수 있는 귀만을 허락했냐고 신에게 한바탕 퍼붓는 살리에르의 한탄과 비애를 전하지만, 사실 얼마나 배부른 소린가? 모차르트와 동시대인이라는 거, 그거 축복 아닐까?/ 돌이 아니라, 쏟아지는 별들에 맞아 죽을 수 있는 행복. 그건 그냥 전설일 뿐인가?”(뒷 표지)

 

 이미 개념과 언어를 도구로 택한 출발점에서부터, 철학은 사상(捨象)을 운명으로 삼았다. 사물에 닿지도 않는 손으로 사물을 말하려는 저 거짓된 입들을 보라. 그러나 여기에 단지 자조하거나 절망하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고백의 말미에 “친구, 정말 끝까지 가보자. 우리가 비록 서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도록 증오할지라도”라고 덧붙이는 이 사람,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그러므로 나는 오늘을 명명한다, 베껴 쓰기의 시간이 돌아왔다고// 플라톤을 베낀다 마르크스를 베낀다 국가와 혁명을 베낀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베낀다 (…) 무수한 어제들의 브리콜라주로 오늘의 화판을 메워야 한다/ 태양이 너무 빛났다, 어제와 장미 향기가 다 증발하기 전에/ 너를 그려야 한다.”(「어제」) 매일매일 생동하는 삶의 태양 아래서 희미하게 남은 향기가 다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는 다급함, 지금 당장이어야만 하는 생의 기록, 그것이 그녀의 동력이다.

 

오로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불가능의 언어, 그러나 그것으로라도 세계를 기입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 막무가내의 마음 덕분에 철학은 꿈틀거리는 시가 된다. “사내가 초록 페인트 통을 엎지른다/ 나는 붉은색이 없다/ 손목을 잘라야겠다”(「봄이 왔다」) 설령 그 무모함이 우리를 실패로 몰아넣게 되더라도 “더는 못 기다려,/ 배가 고파”(「줄리엣」) 가만히 앉아서 탈색되는 것들을 보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맞아 죽고 싶습니다/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습니다”(「청춘2」).

 

 그러나 이것을 순전한 실패의 몸짓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시는 어떤 단호한 지향점을 갖고 있는데, 진은영 시 세계의 특유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반짝거리는 순간이다. 뜨거운 생의 낮이 잦아들고 사유의 밤이 찾아왔다. 그녀는 혼자 밤 산책을 하다 “끼인 발”의 시간에 시를 쓴다. 오늘날 이 밤에 “위대한 악을 상속 받았던 도둑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검은 비닐봉지조차 가끔은/ 주황 지느러미가 빛나는 금붕어를 쏟아”내는 법이니까.(「모두 사라졌다」) 위대한 사상들, 즉 주관(자아)과 객관(세계)의 일치는 포기됐지만, 그녀의 두 발은 여전히 저 밤의 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롯하게 주관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대신, 할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 손가락을 뻗는 것. 그 행위는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詩)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또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더 부드러운 무엇….

 

 “내 가지 사이로 새소리 들려와요/ 일제히 부르는 소리예요 나도 따라 부르고 싶지만요/ 입 벌리면 입 안 가득/ 튀어나옵니다 하얀 밥알들// 입 다물고 먹어라 혼이 났습니다// (…)// 나무가 되어 오래 기다렸어요/ 나는 자랄수록 몸이 약해져요/ 다른 것들의 그림자하고만 놀아요/ 오늘은 너무 아파요 낮의 그림자 딱딱해요/ 처음으로 밤이 되길 기다렸어요/ 밥풀나무의 밤 그림자 부드러웠어요/ 밥풀나무 꼭대기에 노랗고 더 부드러운 게……”(「나무가 되어 기다렸어요」)

 

 『사전』은 철학의 지향성과 시의 설명불가능성을 껴안은 자리에 위치한다. 그녀는 추상이 탈각한 것들을 주워 철학나무의 손가락 끝에 시로 매달아 놨다. 시와 철학이 어느 하나도 포기될 수 없다. 바로 그 순간, 철학은 제 궁지에서 벗어나며 시는 몰랐던 이정표를 얻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