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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Out

「Lots of Sparks」의 마지막 컷, 5차 희망버스와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이야기 하나. 1996년 2월, 제 4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 한 편이 출품된다. 「A Single Spark」. 영화 배경은 1969년 한국, 어느 차가운 12월의 마지막 날. 한 청년이 촛불을 밝히고 일기를 쓴다.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나지 않기 위하여 나는 결단코 투쟁하련다.” 이듬해 그는 자신이 일하던 평화시장으로 돌아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 노동운동의 역사를 밝히는 불꽃이 된다.

영화 이야기 둘. 영화는 항상 눈을 홉뜨고 입을 열었다. 작은 8mm 카메라 하나면 사회 어디든 파고들어 고스란히 훔쳐낼 수 있었기 때문인지, 공동작업의 특성상 노동조합이란 것과 연을 둔 때문인지, 영화는 사회를 보고 삶을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결과물을 수많은 영화애호가들에게 들려줄 좋은 기회였다. 대우정밀 해고 노동자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해고자」(1회), 철도 노동자를 다룬 「죽음의 터널속으로」(5회)와 「소금-철도 노동여성자 이야기」(8회), 기륭전자 노동자들에게 바쳐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14회), 콜트콜텍 노동자를 다룬 「꿈의 공장」(15회)까지. 올해도 빠지지 않았다. 대만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여성의 삶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돈과 사랑」,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잼다큐 강정」. 이 글은 바로 이 ‘자랑스러운’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축제와 집회의 화해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인들은 영화처럼 만나…

10월 4일(화) 세종문화회관 앞에 1,500명이 넘는 영화인들이 모였다. 5차 희망버스가 내려가는 날,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276일을 앞두고 ‘희망버스지지 영화인 276인 선언’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목표 인원을 훌쩍 넘기며 서로에게서 희망을 본 영화인들은 해운대 내 ‘희망터’ 부스를 설치해 관련 영화 및 다큐를 상영하고 ‘강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을밤’ 파티도 열 계획이란다.

부산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부산지역 야당 및 시민단체에서는 4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가정파괴·민생파탄·정리해고철회, 한진중공업 국정조사 즉각 실시. 오이소 희망버스, 살립시다 서민경제, 보냅시다 정리해고”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어 5차 희망버스를 기껍게 반겼다. 그런가하면 허남식 부산시장과 제종모 부산시의회의장은 26일 ‘제5차 희망버스 중단 촉구 공동 호소문’을 발표했고, 30일에는 부산범시민연합 대표 100여명이 민주노총을 항의방문하고 희망버스 저지 기원제를 열었다. 

하긴, 모두 웃으며 좋게 해결했으면 여기까지 왔을일도, ‘영화처럼’ 욱씬하지도 않았을터였다. 보수언론이 가만 있을리 없다. 서울신문에서는 ‘부산영화제 방해 말라는 목소리 새겨들어라’(10월 3일자), 조선일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훼방놔 국제적 주목 끌겠다는 건가’(10월 2일자), 서울경제는 ‘희망버스 멈추라는 부산시민의 호소’(10월 2일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고, 문화일보 김종호 논설위원은 ‘부산국제영화제와 탈레반’(9월 30일자)라는 제목의 시론을 썼다. 이에 묻는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희망의 버스는 부딛칠 수 밖에 없는가. 축제와 목소리는 함께 할 수 없는가. 

축제와 집회,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관한 고민

“파리에서는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태평하게 영화제를 즐길 여유가 없다.”

1968년 5월, 제21회 깐느 국제영화제 기자회견. 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닌 영화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영화제를 중단하고 파업을 지지할 것이다.” 주최측은 이를 받아들여 영화제를 중단했다고. 프랑스 영화인들은 학생들과 함께 피켓을 들었을뿐 아니라 다음회 영화제에서 학생혁명을 다룬 작품인 「IF」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중단 된 것은 비단 영화제 뿐만이 아니었다. 2003년 아비뇽연극제 역시 정부의 실업수당 감축안에 항의하는 문화예술계의 파업으로 무산됐다. 잭 니콜슨과 키아누 리브스, 롤링 스톤즈만한 명사들이 헛헛하게 발길을 돌렸다. 이들은 다음해에도 무대를 점거해 권위있는 프랑스 연극상인 몰리에르상 시상식을 망쳐놓고, ‘칸영화제 저지를 위한 위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2006년 칸은 진짜로 수난을 당했다. 이번엔 경찰노조가 영화제 개막일에 맞춰 근무 조건 개선을 위한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축제와 집회 간의 싸움. 한국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우리 사회는 대체로 국제행사의 편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1인 시위자까지 연행해갔고, 올 4월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 시장의 명을 받고 시내 20여개 장소에 집회신고를 냈다. 먼저 선점해서 버스노조의 집회를 막으려던 것이었다. 독일 월드컵 당시의 쾰른 대성당 앞 광장이 파룬궁 회원과 이란의 반정부단체, 터키계 사람들로 시끄러웠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축제의 편이었다.

한 번 더 다른 질문을 건넨다.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였을까. 2012올림픽 개최국 선정 당시 IOC평가단이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전역은 파업으로 교통마비 상태였다. 파리시는 IOC에 “파업도 우리 민주주의의 일부”라고 설명했다고. 프랑스의 사례는 꽤나 극단적이지만 하나의 사실을 시사한다. 희망 버스는 영화제와 유리시킬 수 없는 한국의 단면, 부산의 한 모습이 아닌가하고. 집회도 우리 사회의 일부라고. 

‘공존’,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함이 아닌 함께 웃도록.

‘공존’이라고 했다. 2011년 4월, 버스노조의 파업을 두고 전주국제영화제측이 밝힌 공식입장이었다. “파업 타결 전에도, 타결 후에도 전주국제영화제의 바람은 단 한 가지로 동일합니다. ‘공존’, 이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절박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저희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살펴 나가겠습니다.”

한국 사회의 일부인 집회와,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인 축제가 함께한 순간은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번 논란이 된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에서 말이다. 2회 부산국제영화제였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영화 검열에 항의하는 영화인들의 시위가 남포동 피프광장에서 열렸고, 즉각 해산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에 대한 영화제 측의 대응은 지금도 종종 회자된다. 당시 프로그래머를 맡았던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시위도 영화제의 일부’라며 막아선 것이었다.

더 적극적으로 집회가 축제 속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10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아펙반대 미디어문화행동’이 해운대 해변에서 ‘NO-APEC FESTIVAL’을 열었다. 문화제와 「세계를 뒤흔든 5일, 시애틀 투쟁」과 「알고 싶지 않은…」 등의 야외 영화상영, 1인 시위, 반전·반세계화 전시…. 그런가 하면 작년 국제 영화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장이었다. 부산 서면 부전시장에서는 ‘예술포차 프로젝트’가, 해운대에서는 ‘No Workers, No music. No music, No Life’ 콘서트가 열렸다. 영화 상영과 투쟁의 전달, 영화제와 지지성명 받기. 축제와 시위. 모두 성공이었다. 

…‘세상은 곧 영화가 될 것이다.’

공존이라고 했다. 축제와 집회의 영화같은 조우. 1,547명의 영화인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읽는다. 일전 스크린쿼터에 대한 영화인들의 투쟁을 담은 기록 다큐멘터리 「노래로 태양을 쏘다」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대작으로 상영된 적 있다. 이번에는 크레인 위에 오른 한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A Single Spark’가 우리 사회 여기저기 붙여 놓고 간 많은 불씨에 관한 이야기일 듯하다. ‘진짜 영화’는 그 열기들에 있다. 크레인에 오른지 267일. 우리 올해와 같은 내년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맞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마지막 컷만 남았다.



△참고자료
www.jinsuk85.org
www.biff.kr
bus.nodong.org 민주버스본부
dominiquek.egloos.com/1485091 ‘41년전, 68년 칸 영화제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blog.daum.net/parismadame/8792129 ‘시민들의 발을 묶어놓는 프랑스 파업’
www.noside.co.kr/tc/487
[한겨레] 아비뇽연극제 ‘무대 못서나’(2003.07.10)
[한겨레] 칸 영화제 무산위기…비정규직 수당감축 반발(2004.4.21)
[오마이뉴스] ‘김대중, 이회창도 막아낸 당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 오체투지의 심정으로’
[주간조선] 프랑스 노동자, 총파업으로 국가 올스톱(2005.03.14)
[주간조선] 프랑스의 고질병, 파업 주간조,선(2005.03.28)
[mbn] 프랑스의 소방관 파업(2006.11.23)
[전북매일신문]“민노총 집회 이번만큼은 안돼”(2011.04.13)
[한국대학신문] “월드컵 기간 중 집회 시위자유 현저히 침해”(2002.07.29)
[동아일보]파룬궁 퍼포먼스, 인권집회, 반핵시위… 마이너리티의 해방구(2006.7.1)
『문화비평』 50회, 2000년 4월호,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