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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Out

겨울 단상: 연애連愛합시다


“봄은 바다 안개가 심해서 따뜻함을 몰랐고, 여름은 너무 뜨거웠고 비도 많이 와서 휴가라는 환상이 사라졌으며, 그나마 가을이 나았는데 올해는 겨울이 이르게 찾아왔습니다” (11월 1일, 김진숙씨가 배우 김여진과의 전화통화 중)
 
10분 만에 얼어버렸다던 물대포 소식 때문일까. 이른 겨울이 유독 춥다. 시린 손에 불현듯 다른 손을 올려놓고 싶은 걸 보니, 누군가를 만날 때가 왔나보다. 이럴 때면 꼭 못내 아쉬웠던 기억들이 먼저 머릿속을 치고 오른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니 ‘도대체 왜 그랬을까’를 되뇌는 건 인지상정이려나.
 
사랑에 실패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꼭 해야 할 말을 아끼는 것은 그 중 한가지다. 이를테면 “괜찮아, 당신 잘못이 아니야” 같은 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쌍용해고자 이창근씨에게 건넨 말이다. 정리해고의 불행은 너무나 당연하게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한다. 말하자니 뻔해서 화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애먼 이들은 상처를 받고 있었을까. 올해 쌍용은 19번째 고인을 영면해야했다. ‘산 자’들의 자살도 비슷하다. 왜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걸 잊어버렸을까. 현재 한국 자살률은 OECD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고, 그 중 소위 ‘사회적 타살’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혹자는 본래 목적하던 것에 비하면 참 소소하기 그지없는 것들로 균열을 얻는 경우를 경계하기도 했다. 『소금꽃나무』에 실린 한 예술 노조에 대한 일화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다가도 어떤 예상치못했던 방식으로 위태로움을 겪는지를 시사한다. 포기와 타협, 그 사이에서의 내부 분쟁. 연대를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요인을 김진숙씨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피해 당사자를 그 합의 과정으로 끌어내 앉히고 결국은 자기들끼리 적이 되게 만드는, 그래서 결국은 아무도 남지 않는.” 한 비정규투쟁 노동자가 영화노조를 하는 이에게 “너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잖아”라고 했다던데, 우린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이해의 선을 조절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남아있다. 바로 망각이다. 물론 151명의 치졸한 명부나 내곡동 사저의 비열함 같은 끝끝내 챙겨야만 할 것도 산재해있지만, 무엇보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바로 ‘사람’ 그 자체다. 50여명의 노동자가 백혈병과 악성종양으로 숨을 거뒀음에도 열린 ‘반도체의 날’ 기념행사는 입에 담을 것도 없다. 종내의 환희는 쉽게 어려움의 망각으로 바뀐다. 우리가 85크레인에서 읽어야 할 것은 망각이 아니다. 단지 더 많은 희망이다. 1,4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이나,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다는 이유로 2억 6천여만 원의 배상을 요구받은 140여명의 홍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잊어버린 연인의 기념일처럼 후회로 남지 않게.

연대連와 사랑愛이, 이젠 진부하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사랑하자’는 구호로 점철돼있으니 말이다. 재능교육, 콜트․콜텍, 유성기업, 발레오공조, 쌍용자동차까지….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속에 숨 쉬고 있는 각각의 사연은 저마다의 절절함을 지니며, 각각의 목소리는 지금 가장 위급하다고. 마치 각자의 사랑앓이처럼 말이다. 

이것은 비단 올 한해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청년실업률이나, 법인화‧FTA안 같은 궂긴 일들을 볼 때 ‘88만원 세대의 겨울’은 앞으로 점점 이르게 찾아올 가능성이 짙다. 그래서 하루 바삐 연애해야겠다 싶다. 그럼 내년, 내후년은 날씨가 궂어도 좀 견딜만하지 않을까. 이봐요, ‘그러니 우리, 사랑할래요?’





그러니 우리, 사랑할래요?
 
(…)
 
피 흘리는 벽들이 서로의 가슴을 칠 때
진동으로 생겨난 샛강 같은 골목들
그대와 나의 혈관을 이어 across the universe!

(「Everybody shall we love?」,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