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ragment/Book

그는 사람으로 시를 씁니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꿈꾸는자잡혀간다송경동산문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송경동 (실천문학사, 2011년)
상세보기


희망 버스가 한창 입에 오르내릴 때 그의 시집을 샀다. 몇 장을 뒤적거리다, 읽고 싶던 시만 빼꼼 읽고 덮었다. 사유하고 사유한, 어떤 조각된 말에 비하면 좀 투박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민주화의 열기를 그렸던 시들처럼, 지금 이 시대에 이렇게 이를 악물고 쓰는 시가 드물겠거니 그만큼만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수감된 중에 출판된 『꿈꾸는 자 잡혀간다』에서 그 시를 다시 만났다.

언어를 몰랐던 때문이다. 마치 글자를 모르듯, 누군가가 품고 있는 울분과 사회의 폭력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시를 온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잠긴 문 속에서 불 타 죽은 태국 188명의 노동자를 몰랐고, 대추리에서 일어난 공권력의 만행, 그 분통 터지는 시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책에는 일화들이 친절하게 엮였다. 이를 사전 삼아 그의 생각을 더듬어 읽을 수 있었다. 그제야 「꿈이 아닌 날」의 첫 번째 연이, 「노동자 조영관 잘 가시라」의 “망치소리로나 만나요/ 누군가 또 여리거나 아프다면/ 그게 형인 줄 알게요” 같은 구절이 와서 닿았다. 책을 읽고 나서야, 손톱 밑 때가 부끄러워 전철 손잡이를 못 잡고 웅크린, 그 수심어린 손을 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을 알았다. 또, 자신이 뱉은 말이 사실인지 진실인지 스스로 가책하는 시인의 감수성을 읽었다. 이 책은 시인의 일기이자,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추모글, 응원의 편지, 그리고 “노동현장의 언어로 정직한 방식으로” 쓰인 시의 해설서다.

그렇게 눈이 어두운 내게 가까스로 전해진 진심의 편린 중 하나를, 책에서 인용한 흑인 여류시인 니키 지오바티의 시구를 들어 밝혀야겠다. “나는 어떤 백인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 써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가난과 절망을 노래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김진숙씨가 죽으러 크레인에 올라간 것이 아니듯,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혹자들이 폭도라 불렀던 그들은 기실 소박한 중에서도 제일 뜨겁게 사랑했고, 아픈 중에서도 반드시 웃음을 찾아냈던 사람이다. 이 싸움은 그 온기로 이기와 비겁함을 이긴 사람들의 몸짓이다. 시인은 노동에 대한 자부심과 사람에 대한 긍정을 통해, 좌절을 경계하고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식힌다.

그는 몸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다. 투박한 말의 조각들은 행동에서 나온 진심을 품고 앉아 있다. 노동자의 손 모양으로 억센 그의 글이, 언젠가 입가에까지 뻗어 “꽃을, 사랑을 노래” 할 수 있길 기도한다. 이제 시집을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