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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Play

진정성의 칼은 모두의 목을 겨눈다, 「전하의 봄」

 



2012
년 4월 21(토) 오후 3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연출 김승철 극작 이해성(원작 신명순)
창작공동체 아르케


이를테면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에디푸스 왕」(Oedipus Rex, 1967)을 들 수 있겠다. 영화에서 코린토스와 테베를 잇는 오이디푸스 여로의 양쪽 끝은, 현대의 모로코다. 이런 시퀀스가 상징하는 것은 물론 빤하다. 현재에도 과거의 고민이 존재한다,는 사실. 어떤 학자가 학생에게 신숙주를 연기해보라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연극이라면, 역시 동일한 목적이었겠다.(「전하」, 1962)


그런데, 2012년에는 이런 연극이 올랐다. 액자의 틀이었던 현실이 기를 쓰고 극에 침투한다. 과거의 서사를 분절하고 몰입을 와해한다. 연극 「전하의 봄」이다. 장면을 보자. 무대 위는 한 연극의 리허설 중이다. 세조 1년, 단종복위거사의 발각. 동기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 집현전 학자 신숙주(이형주)의 감정은 점차 고조되는데, 이 때 숙주, 다음 대사. “아, 선배 잠깐만요. 도저히 못하겠어요.” 이 극은 50년 전처럼 다만 과거를 연기하기에는, 분명 무언엔가 불만을 품고 있다.

 
도저히 못하겠다니, 무엇을 말인가. 먼저, 이 말을 ‘신숙주의 행위’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해보자. 이것의 대척점에 성삼문이 있다. 설령 개혁이라도 어떻게 명예를 버리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의 물음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많은 평이 서술하듯, 「전하」나 「전하의 봄」에서 현실의 어떤 권력들을 나란히 떠올릴 수도 있겠다. 연극은 이제 이렇게 묻는다. 그것이 설령 발전이라도 어떻게 민주주의를 버리고 국민을 죽일 수 있는가.

 
그런데 단종과 세조를 위시로 한 이 구도는, 현실에 나란히 병치하기에 어딘가 투박해 보인다. 극 중 리허설이 중단 될 때마다 애초의 문제가 여러 갈래로 찢어지기 때문이다. 윤씨, 세조, 삼문 등의 인물이 가진 기조와는 별개로, 배우들의 의견은 다각-계유정난에 대한 평가부터, 예술과 시대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의 판단을 관객에게 넘겨도 좋은가 등등-에 걸쳐 얽어진다.

 
그렇다면 이 “도저히 못하겠다”는 외침을, ‘신숙주라는 인간을 연기하는 행위’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의 대척점에 연출(김학수)이 있다. 이번에는, 배우가 자신의 윤리관과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옳은가,를 묻는 소리겠다. 연극이 멈출 때마다, 이 의문에 배우와 스텝이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할 때마다, 극 전반을 이끄는 물음이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 이 극이 단순한 극중극을 넘어서서, 지속적으로 흐름을 깨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하의 봄」은 젊은 작가가 노 선배에게 “그런 시대에서 「전하」는 옳았습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 그 모든 당연함을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묻는 것이다. 그 당위는 권력일 수도, 반反권력일 수도 있으며, 어떤 직업적 의무나 사회의 도덕일 수도 있다. 한 사회학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행위들은 진정성이 없는 시대에서 ‘진정성을 욕구하는 몸짓’인 것이다.

 
이를 위한 김승철 연출의 무대는 견고하다. 이해성 작가의 대사들이 만드는 팽팽함이 시각적으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있다. 무대의 밧줄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데, 특히 사육신의 목이 떨어지는 장면과 단종의 목을 매다는 장면이 그러하다. 연출의 전작 「안티고네」(2010)의 철장 속에서 만큼 극에 일치되지는 않지만, 늘어뜨려진 선은 매 장면에서 독특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무대 양쪽의 가파른 벽은 공간을 사선으로 지르며 권력의 무게를 형상화하고, 한 가득 먹선을 뿌린 배경과 그림자의 사용은 유려하다.

 

마지막 장면. 극중극, 아니 사실은 극중 극중극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관객석에 앉아있던 ‘진짜 연출’이 무대 인사를 마친 배우들한테 밥 먹으러 가잔다. 이런 시퀀스가 상징하는 것은 물론, 알만하다. 지금 이곳에도 고민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 재치 있다. 그들은 밥을 맛있게 먹었으리라. 그러나 배우들의 퇴장 뒤에 남은 우리는 어떠한가. 긴장해야만 한다. 이 극은 특정 권력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 앞에 멍하니 선 모두에게, 연극은 칼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