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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Play

88만원 세대의 현실극, 그렇다면 내일은 어디에 있는가, 「서울테러」




2011
년 12월 31(토오후 4
대학로 배우세상 소극장
연출 김갑수  원작 정범철  
배역 남수현, 한재영, 우수정, 지환


딱 봐도 빈貧한 단칸방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라면을 끓여 먹는다. 5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33세 백수 황장복이다. 7년을 사귄 여자 친구와 막 헤어졌고, 외상값은 밀려있는데다, 전기와 수도, 보일러까지 끊겼다. 사건은 이러한 궁지에서 발아한다. 「서울테러」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88만원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이 극에 질문을 하나 던져보면 어떨까. 현실을 담은 극 「서울테러」는 정말 ‘현실적인 극’인가.


표현의 범주에서라면 극중 먹는 장면을 주목하는 게 좋겠다. 배우들은 열심히 먹는다. 라면부터 짜장면, 짬뽕, 단무지까지. 언제나 그렇듯 궁핍의 가장 대표적인 어휘는 주림이고, 어설피 표현할 바에야 실물을 올리는 건 꽤나 우직한 연출법이다. 게다가 이 극에서 음식은, 곤궁함의 표현을 넘어, 지기知己 노상태가 던지는 연민의 상징물이며, 사건의 전환을 가져오는 외부 인물의 출입 방법이고, 얼마 없는 웃음 코드이기도 하다. 폭탄에 실제로 불을 붙이는 것까지 포함해 이 '실현'을 패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로인해 ‘연극적 약속’을 신뢰할 때만이 나올 수 있는, 미적이고 독특한 미장센을 포기한 것이 아쉽다. 더욱이 짜장면이라면 우리에겐, 면발이 날라 다니고 온 무대에 냄새를 풍겼던 「방바닥 긁는 남자」(김지훈 작)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무대 위에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한다는 것은 실상, 디드로의 말처럼, 너무 평범해서 부박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20·30대가 공감을 느낀다고 평가받는 내용은 어떤가. 극단 배우세상은 「아름다운 인연」, 「녹차 정원」 등 사회문제를 지적하고, 그 속에 인간적인 것이 있음을 말하길 즐기는 극단이다. 이번 극도 이슈를 잘 포섭했다. “폭탄들이 하나, 둘씩 늘어갈 때마다 지금까지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그 순간들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어”라고 부르짖는 황장복의 분노는 극 후반으로 갈수록 잘 드러나고, ‘죽지 않아도 됐을 인물의 죽음’이라는 반전을 타고 그 팍팍함이 친구 노상태에까지 전이된다. 


극 중 인물들의 문제는, ‘오답’뿐이라는 것이다. 황장복의 대사를 더듬어보자. “크리스마스 전까지 취업을 못하면 다이너마이트로 서울을 테러하겠다”는 내깃말은 우격다짐이고, “왜 날 인정해주지 않는 거야”라고 묻는 말은 칭얼거림이다. 소극적이나마 그럴듯한 답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친구 노상태다.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놓더라도') 어떤 일이든 해라, 포항으로 내려가자." 이것은 정답인가. 불합리한 기성구조를 해체하려는 인물의 부재, 그 빈자리가 크다.

 

이 극은 ‘지금’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뒤돌아 생각해보면 다분히 ‘과거 지향적’이다. 허탈하다. 김갑수 연출은 첫 연출작을 올리며 “연기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연기자가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현 세태에 대한 의분의 표출이라는 점에서는 이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하겠다. 그렇다면 ‘관객이 원하는 것’에 답할 때가 아닌지. 현실적인 극이란, 작금의 표현을 넘어 이를 고민하는 극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우리 삶이기 때문에, 오답체크 또한 주목할 만한 시사점을 남긴다. 무대 위에 진짜 흉기라곤 칼 밖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의 다이너마이트는 긴장과 불안으로 우리 몸피를 동여매는데 그치고 말 가짜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위험물은 우리가 일상에 품은 칼 한 자루다. 바로 타협과 절망이다. 이를 직시하는 한, 황장복에게 내일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