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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차라리 가난이었으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신에게는손자가없다김경욱소설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경욱 (창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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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가난과 궁상은 부지런히 서로의 경계를 오간다. 어릴 적부터 ‘어디가서 기죽지는 말거라’가 중요한 가훈이었던 덕분에 나는 집에 손을 벌릴망정 어지간한 경우에도 돈 없는 티는 내지 않았다. 풍요는 가난을 낭만으로 읽게한다. 찌질하지 않은 가난은 젊음의 상징이 되고, 부도덕한 부에 대한 반항이 되고, 시와 소설의 소재가 됐다. 자취를 하고 나서야 어렴풋히 궁상을 알았다. 찌질함은 다소 이상한 곳에 있었다. 배를 곯는 것보다 BB크림이 떨어지는 게 궁상맞았고, 집에 걸어서 가는 것보다 빨래 세제가 떨어지는 게 궁상맞았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스토리에 기대하는 것은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낯부끄러운 궁핍함이 아니라, 숭고한 가난함이길 바랐다는 것을 알았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이런 ‘감상적 가난’에 대한 기대에 뒤통수를 치는 책이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상실된 사람들을 소재로 세상의 치부들을 조목조목 써내려간다. 굳은 마음으로 해치운 범죄 후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이 고요하다. 이내 뭔지 모르게 목이 타서 주변에 묻는다. (약을 받으면서 사내는 별일 없었느냐고 물었고 간호사는 별일도 다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p32) 화염병 두어개로 악을 통렬하게 벌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변한게 없고 주인공은 영웅이 되지 않는다.(「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허둥지둥 도망가려는데 하필 자전거가 움직이지 않는다거나(「러닝맨」), 어설픈 아이디어를 체화된 브리핑에 뺏겨버린다거나(「99%」), 그렇게 굳게 마음먹고와도 보증 서달라는 친구에게 거절의 말을 못한다거나(「아버지의 부엌」)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혼인증명서를 만든다는 여자친구에게 가까스로 보낸 문자가 ‘기다려달라’도 아니고 하다못해 ‘행복하렴’도 아니고 왜 ‘미안해’인지.(「연애의 여왕」) 작가가 써 내리는 것들은 아파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들이 아닌,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는’ 것들이다. 

그래서 책은 더욱 건조하고 묵묵하다. 부끄러운 것은 어설픈 것이고, 어설픈 것은 대체로 다이나믹하지 않다. 국어책이 알려준 기승전결을 따져읽을 정도로 굳어버린 머리는 아니지만, 사건의 완결된 굴곡을 기대한다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다소 뜨아하다. 자서전을 완성짓거나 인물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것도 아니며(「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의뭉함을 해치운 것도 아니고(「99%」), 자신의 성격을 거스르는 뭔가의 행위를 한게 아니라 약간의 화해를 한 정도. (「혁명기념일」) 어떤 사건도 주변이나 스스로를 시원하게 변화시키진 않는다. 어쩌면 삶이란 것 자체가 그렇게 기대만큼 아름답거나 비참하지 않아서, 심장이 먹먹해질 정도의 아픔을 읽고 싶고, 부러워 호흡이 빨라지는 사랑이, 통쾌한 성공기와 통렬한 실패기가 만족스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나. 세상은 나 하나에 크게 흐름을 달리하는 것도 아니며, 건조하고 묵묵하게 그리고 어설프게 한 시름 한 시름을 치워나가는게 대부분의 삶일터. 

이런 생활이나마 영위하기 위해서는 궁상맞아야 한다. 현실 속에 ‘진짜 가난’은 없고, 오로지 ‘진짜 궁상’만 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그런 진짜배기 별로인 삶을 담담히 써내려간다. 호쾌하지 못하다. 그런 진실을 인정하자니, 불편한 삶들이 좁은 단편 속에서 해답없이 이지러지는 모습이 꽤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