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덫 그 이전, 『저녁의 구애』, 『사육장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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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구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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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
지은이 |
편혜영 (문학과지성사, 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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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덫'이다. 시종 섬짓하다. 가장 가벼운 것이라도 의뭉스럽고, 암울한 것은 장을 넘기기도 찝찝하다. 그러나 끔찍이나 참혹과는 다르다. 인물들은 사건에 무릎 꿇려 울고 있지 않다. 인과의 앞이나 뒤, 혹은 양 쪽이 잘린 채,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걸어만 가고 있다. 넘어지고 있는, '기우뚱'의 시간. 『사육장 쪽으로』가 이 순간을 꼬집어 늘려놓았다면, 『저녁의 구애』는 그 끝을 이어 동그마니 붙여놓았다. 반복의 덫이다. 그래서인지 전작의 묘사에 동물성이 많은데도, 후자가 더 그로테스크하다. 저자에게 반복은 선택이 거세된, 그러나 조금이라도 금을 넘으면 숲에 들어서는, 지속적으로 불유쾌하고 불안할 수평의 덫이다. 그 올가미가 띤 일상성이 무섭다. "누군 안 그러고 사나."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뭔가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다물리기 직전의 순간에 살고 있다.
2. 결국 그런게 사람이란다, 『그 남자네 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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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네집 |
카테고리 |
소설 > 한국소설 |
지은이 |
박완서 (현대문학, 200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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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거나 따뜻한, 같은 수식은 집어넣도록 하자. 문장은 담담하고 편하다. 저자는 그 잔잔한 강물에 돌 던지기의 글을 쓴다. 그 돌은 물론, 솔직함이다. 안 써도 되는 것들을 꾸역꾸역 쓰고, 그렇게 쓰진 않아도 될 것들을 그렇게 쓴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한 편만 끄집어보자. 상황이 참 곤란하다. 늙은이 냄새가 날까 비누를 장에 넣어 놓을 만큼 품위롭게 살자했던 어머니가 병으로 하필 배변을 못가리게 됐다. 거개의 표현도 돌려쓰지 않아 난처하다. 난봉꾼 아비를 앞에두고 위엄있게 산 어른이 "사춘기 때는 배알도 빼놓은 여자처럼 보였다"고 말하고, 똥구멍이니 괄약근이니 참 있는대로 쓴다 싶다. 압권은 글의 말미다. 암 소식을 듣고 "여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하는 아버지에 웃음이라니. 대부분의 순간에서 슬픔도, 사랑도 '소설처럼' 아름답게 다듬어져있지 않다. 그런 맨살을 드러낸- 서운함, 낯부끄러움, 포기, 무지, 촌스러움, 어긋남 같은- 것들의 인간적인 냄새를 인정하고 적고 있기 때문에, 글은 연민이다. 때문에 사람에 아주 가깝다.
3. 집요하게 세계의 틈으로 파고들어, 탁,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딸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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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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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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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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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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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문학과지성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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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부터 최근까지 고집스럽게 이어진 작가 특유의 것들이 도드라진다. 도회와 흙냄새의 교차, 살갗 맞댐에 대한 애정,
상실에서 비롯된 병적 심리, (전화, 글, 소리 등을 통한) 먼 곳에서의 위로. 많은 경우에, 저자는 주인공들을 어딘가로 보내어 상실을 상기시키고 직시케 해 위로의 실마리를 얻는데, 장편은 좀 더 이 여정을 길게 빼낸다. 언젠가 설핏 밝힌 것처럼 거짓말 같은 환청, 망각이나 실명 등의 소재는 종종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시기적절하게, 『딸기밭』의 해설(김병익 평론가)이 내 의문에 답변을 던진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는, 내가 아직 밟지 않은 "블랙홀"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그 슬픔의 우연성 그 자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얼어터진 찬 손을 끌어당기는 그러쥠이 도타워진다.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지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차고 솟아오르는 거야." 탁.
4. 복수, 더 심연으로, 그러나 다시 균형을, 『독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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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미 |
카테고리 |
소설 > 프랑스소설 |
지은이 |
티에리 종케 (마음산책, 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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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기도 하거니와, 한 번에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기괴한 복종, 위태로운 도주, 그리고 처절한 감금. 세 갈래의 길이 만나는 지점을 향해 음침한 걸음을 옮기면 금새 막바지에 닿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금' 모티브는 일견 「올드보이」의 복수극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여기 더해진 스톡홀름 증후군·리마 증후군이 인물들의 심리변화를 매력있게 끌어낸다. 막바지에 긴장감이 잘 조여있다. 이브와 리샤르가 '비밀'속에 덮어왔던 증오를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순간, 그리고 두 사람의 선택. '독거미'는 복수의 먹이를 철저한 씨실과 날실을 통해 옭아매는 리샤르를 칭한다. 그러나 어쩌면, 시소 저편의 인물이 '그 사람'일지라도 다시 균형을 잡지 않고서는 혼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독을 품고서라도 매일같이 관계의 그물을 뿜어내는 인간상을 표상하는지도 모르겠다. "오후에 수영장에서 읽기 좋다"는 표현 딱 그만큼일지라도, 알렉스의 등장이 지나치게 우연적이라도, 작품은 분명히 재미있다. 그리고 이제, 알모도바르를 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