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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스테레오 타입을 뒤엎은 조각 퍼즐의 유쾌함, 『퀴르발 남작의 성』

 

퀴르발남작의성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최제훈 (문학과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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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이 조각 퍼즐을 닮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형식, 내용, 인물 등 다양한 층위에서 말이다. 강의와 대화, 인터뷰, 뉴스를 조합하거나(「퀴르발 남작의 성」), 사건과 사건의 닮은 절단면(「그녀의 매듭」)을 통해 서사가 진행된다. 기존 캐릭터의 특징을 절묘하게 교합하며(「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휘뚜루마뚜루 세계사1」, 「괴물을 위한 변명」), 한 인물이 다수의 인물로 파편화되거나(「그림자 박제」), 내부에서 캐릭터를 직조해나가기도(「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한다. 뿐만 아니다. 에필로그인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로 이 책은 하나의 거대한 퍼즐이 된다. 이 소설집이 ‘끼다’, ‘꿰다’, ‘맞추다’ 같은 키워드에 밀착된 정도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주볼 것은 퍼즐의 룰이겠다. 먼저, ‘전편보다 훌륭한 속편은 없다’는 헐리웃의 유명한 공식을 떠올려보자. 이미 원작이라는 ‘정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우라를 벗어날수록 오답률에 근접하는 창작의 딜레마. 이런 측면에서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단편은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이다. 그런데 작품은 묘하게, 그 어긋남에서 비껴간다. 속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장은 전복 위, 즉 룰이 다른 판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퀴르발 남작의 성』은 기존 틀 위의 직소(jigsaw; 조각그림 맞추기 퍼즐)가 아니다. 칠교에 가깝다. 이 칠교놀이는 유객판(留客板)이라는 별칭만큼이나 지루할 구석이 없다. 밑그림 위에 조각을 올려놓고 원판을 완성 시키는 것이 아닌, 매번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이 작업은, 그래서 모호하고, 마지막 조각까지 흥미롭다.

그러니까, 이 단편을 읽는 법은 레스트레이드나 『휘태커 연감』에, 디테일하게 묘사된 홈즈의 언어 습관에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유쾌한 지점은, 코난 도일로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의 시도다. 본인이 구축한 세계에 대한 의구(와 자살) 혹은, 캐릭터가 가진 정체성을 일그러뜨리는(“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직관적인 해결은 나의 방식이 아닐세”) 그런 것들. 저자는 여러 장면에서 아슬아슬하게 표절과 재구성의 선을 넘나들다가도, 종내에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최제훈표 소설을 ‘창작’해낸다.

사실 책의 어떤 조각들은 새롭지 않다. 우정과 사랑, 선과 악 등의 통속적 관계라던가, 우연에 기댄 진행, 기억상실, 고리타분한 결혼 관념 같은. 책 속 인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말미의 아이디어는 심지어 너무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결코 빤한 것이 아니다. 능청스러운 입담 덕분이리라. 이 재담가는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대다가 너무했다 싶을 땐 짐짓, 인물들에 팔밀이를 하기도 한다. “내가 미쳤다고? 그래, 그런지도 모르겠다고.”(p113)

그가 “제 소설이 무섭나요?”(『대학신문』, 2011년 11월 7일자)라고 물었다. 적어도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인육 먹는 남작 근처로 배우들이 다투고, 시민들이 떠드는데 무서울 리가 없다. 같은 이유로, 이 책이 자본주의적 담론이라던가, 어떤 비판을 담고 있다기엔 의아한 구석이 있다. 그러기엔 이 작업은, 조금 번거롭다. 이야기의 유희 끝에서 사유할 만한 것은 링 안에 갇혀있던 스테레오타입을 끄집어내는 자의 활달하고 건강한 속셈 뿐, 이곳에서 ‘흥미진진’보다 앞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