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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Book

독서단상3. 『장국영이 죽었다고?』 외


1. 하드보일드와 가까워지는 짧은 순간, 『장국영이 죽었다고?』

장국영이죽었다고?김경욱소설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경욱 (문학과지성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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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소설집에서 그런대로 가장 경쾌한 부분은, '검은 정장을 입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소리 없이 매표소 앞에 집결했다가', '아무일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순간일 듯 하다. 웃길래야 웃기는 법을 까먹은 책이다. 덤덤하거나 먹먹하다. 주변에 한둘은 있기 마련인 이런 진지한 유형이 잠깐이나마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은, 어떤 물음을 들었을 때가 아닐까. 가령, 자기 고백과도 같은 조금 근원적인 의문. 내가 그렇게 해야 했을까,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하고 있을까. 인물들은 답을 모른다. 그게 우리와 닮아서, 소설 속의 짧은 외출이, 시덥잖은 싸움이나 흐느낌이, 맘에 깔깔하게 걸린다.


2. 담배 연기는 비강을 맴돌아 허공으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엘리베이터에낀그남자는어떻게되었나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영하 (문학과지성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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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고 했다. 유려한 호흡이 서사의 불을 빠르게 올려붙인다. 인간의 동력 중 제법 강력한 것, 궁금증을 건드리는 능력이 어지간하다. 장기는 문장뿐 아니라 소재에서도 도드라지는데, 뜨악하지 않으나 새로운, '그럴 법'한 지점을 잘 골라낸다는데 있다. 판타지로 흐르려다가도, 투명해지는 증상과 섹슈얼한 관계를 밀착시켜 도로 땅에 붙들어 놓는 식이다(「고압선」). 그래서 흥미롭게만 이야기를 탐닉하기에도 나쁘지 않지만, 파국의 뒷통수-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못지않게 안쓰러운 내 하루라던가, 제법 일반적인 판단이 사건을 진행시킨다는 사실-를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쉽게 뱉어내지만, 삶을 완전히 유리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소설의 독서법은 흡연과 방법론을 함께한다.


3. 이 언니들, 어디를 보고 있는지, 『낭만적 사랑과 사회』, 『블러드 시스터즈』

낭만적사랑과사회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이현 (문학과지성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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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시스터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이듬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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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낯설고 불편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인물들에게는 문제의식이 철저히 결여돼 있고, 『블러드 시스터즈』의 여울이 가진 불안정성이나 지현이 몰고 오는 우연적 호의 역시 공감하기 어렵다. 화법도 이를 충실히 뒷받침한다. 건방지고 도발적인, 튀어다니는 언어들. 이렇게 솔직한데도, 내가 본 것이 진짜 제일 안 쪽인지 의아하다. 그래서 이 부유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기존 많은 평이 시도한대로) 어떤 의미망에 담아내기에는 어쩐지 난감하다. 다만 분명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텍스트로 흔히 접해보지 못한 여성형 아니, 인간형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보고 있는 곳은 다르지만, 그러한 시도의 측면에서 두 작가의 시선은 일치한다. 도통 이해되지 못한 것들의 내부 깊숙히로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들어가있다.


4. 한 번 더 그로테스크, 『아오이가든』

아오이가든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편혜영 (문학과지성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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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다"는 대답을 읽은 평론가의 글은 얼마나 적확했는지. 가고자 한 것이 단 하나의 지점이니, 직선거리는 단 하나로 측량된다. '이렇게밖에' 그어질 수 없었던 선. 목표점은 더욱, 가장, 끔찍할 것. 언어는 습하고 비릿한 숨을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소설은 찢기고, 부패하고, 점액을 흘리고, 냄새나고, 끈적한, 죽은 것들로 전부가 아니다. 한번 더, 집요할 것. 사람이 없어 도둑질마저 할 수가 없고(「저수지」), 널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마저 무서워해야 한다(심지어 '가장'이란다. 「문득,」). 머리통을 맞으면서도 위기보다 아파트 여자와 금붕어의 죽음, 소설 속의 죽음을 생각하고(「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 개에게 물려 쓰려지며 죽은 원숭이를 생각한다(「만국 박람회」). '왜'가 없는 세상에서, "안녕, 시체들"이라고 웃는 사람. 그 천진한 고집은 무섭고, 또 매력적이다. 작가는 이제 그 점을 우리 가까이로 계속 파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