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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遺事), 되돌아오는 이야기들: <삼국유사 연극만발>

 

 기록된 것은 언제나 기록되지 않은 것을 남긴다. 이것은 기록의 숙명이다. 그러하니 사건을, 그것도 반드시 정확히 기억되어야만 할 슬픈 사건을 기록한다는 것은 얼마나 조심스럽고 위태로운 일이란 말인가. 가령 롤랑 바르트가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애도일기』, 165쪽)고 적었을 때, 어쩌면 당신은 저 문구로부터, 기록이 가져올 수 있는 일종의 폭력을 읽어내려 할지도 모르겠다. 고유한 슬픔들은 때때로 왜곡된 채 사회의 코드에 이식되거나, 외면당하며, 망각을 요구받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들은 문자를 통해 정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어떤 기록들은 한낱 코드화로서의 기록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러한 기록에 저항하여 그것을 와해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삼국유사 연극만발> 시리즈는 그 가능성을 삼국유사라는 텍스트에서 찾았다. 무대가 다루는 주제는 역사의 기록(史記)이 아닌 전해져 내려오는 일들(遺事)에 대한 것, 말하자면, 단 하나의 고정된 진실 바깥의 무수한 진실들과, 거대서사 너머 개개인의 고유한 기억들이다.

 

 이러한 연극들에게 삼국유사의 집필목적―민중들의 자주의식 고양과 불교정신의 전파와 같이 다분히 교과서적인―을 포함한 사료에의 충실함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이들에게 삼국유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이야기하기 위한 원전에 불과하다”고 예술감독이 밝힌 것처럼, 저 텍스트는 단순한 재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더해지고 덜어지며 재배치되고 다시 쓰이는 풍부한 말들의 조각모음이자 거대한 문서고가 됐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마주해보자. 그 첫 무대의 배경은 고려시대 일연이 머물렀던 절, 무주암이다.

 

 더 나은 기록에의 여정, <유사유감>

 

 극은 세 승려들의 실랑이로 시작한다. 함께 서책을 제작하던 견명이 불타버린 대장경을 다시 새긴다며 절을 떠나려하자 회연과 일연이 그를 붙든다. 애절한 매달림에도 소용없이 견명의 마음은 굳었고, 하다못해 서책의 제목이나 지어달라는 동료들에게 그는 ‘삼승유사(三僧遺事)’라는 이름을 건넨다. 그 때, 갑자기 들리는 여자 목소리. “잠깐만요, 뭐라고요?” 

 

 연극 <유사유감>(박춘근 작, 박해성 연출, 10월 7일~19일)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이렇게 서로 침투하는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에 있다. 집필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연과, 인터뷰를 하는 기자 안서희와 문헌연구가 박무달, 그리고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들이 서로의 장면을 중단시키거나 시시때때로 참견한다. 특히, 일연이 써내려가는 대로 제자들이 유사 내용을 달리 연기하는 장면들, 일연의 꿈에 나타난 견명과 회연이 유사 내용의 시비를 두고 다투는 장면들은 극을 중층적이고 유쾌하게 끌고 간다. 의자왕과 그의 아들, 김춘추, 김유신과 계백, 의상과 원효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견해가 극 내부에 팽팽하게 엮여지면, 우리는 사가(史家)에 의해 기록되는 역사의 진실하고 견고한 테두리가 실은 저 관계망들의 특정한 상태에 불과함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흥미로운 장치 하나를 더 확인해야겠다. 이 연극에는 왜 세 사람의 승려가 등장하는가. 일연의 속명은 견명이며, 출가 당시의 이름이 회연이니, 사실 저 세 사람의 승려들은 본래 한 사람이 아닌가. 이를 단순히 극적 재미를 위해 그려진 상상력의 결과물로 보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극 중에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단서가 있다. 안서희가 “삼국유사의 저자를 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묻자, 박무달은 마땅한 대답 대신 모호한 말을 남긴다. “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더 많겠지.” 그저 “일연이 살던 때가 운명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견명이 회연이 되고, 또 회연이 일연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저 말을 이렇게 읽어보면 어떨까. 당시 몽고족의 침입과 뒤숭숭한 국내 정치 속에서 이야기만 남기고 스러진 입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름을 남기지 못한, 그렇다고 해서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닌” 필부필부(匹夫匹婦)들. 삼국유사는 이야기들을 채집한 어느 한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연만의 것도, 물론 세 승려들만의 것도 아니며, 말하는 이들과 듣는 이들, 그 숱한 사람들 모두의 것은 아닐지.

 

 그러하니 저 무명씨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각자의 것으로 남았어야 할 진대. 연극은 “삼국유사의 저자는 일연”이라는 부동의 통념이 못내 아쉬웠던지 스스로 ‘유사유감(遺事遺憾)’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극의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뭇이야기들이 제 주인을 찾고, 뭇사람들이 제 입으로 이야기하는 그 온전한 기록의 불가능성. 결국 불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책이 아니라 사람에, 기록에 아니라 기억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할 때 이 유사란 서책은 무엇이며, 그것이 사기와 구분되는 지점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유사 역시 ‘거짓’이다. 그러나 이는 거짓에 맞서기 위한 거짓이다. 박무달의 이런 대사를 보자. “세상은 괴력난신 자체야. 그 놈과 맞짱 뜨려면 여기도 괴력난신의 칼을 들고 있어야 한다, 이겁니다. 구라에 맞서는 구라. 가짜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가짜.”

 

 극이 말미에서, 인물들은 결국 저 불가능성을 껴안은 채로 계속 살아가려는 듯하다. 일연은 역사가 다 품지 못한 이야기들을 마저 쓸 것이고, 안서희는 사회 속의 칼과 방패가 될 기사들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물들은 더러는 조명 받거나, 묻히거나, 누군가의 입이 되어 주거나, 혹은 다시 무언가를 잊히게 만들 수도 있겠다. 승자의 것과 패자의 것이 나뉘는 영속적인 싸움 속, 계속 유동하는 운명 속에 던져진 기록물들. 기록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그 유감(遺憾)스러운 운명을 껴안고 끊임없이 고쳐 쓰게 될 여정 위에 인물들이 서 있는 것이다. 연극은 “떠나는가? 그렇게 떠나시려는가?”라는 대사로 시작되어, “결국 이렇게 가시는구만?”이라는 대사로 마무리된다. 그리하여 연극은 더 나은 기록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기록이라는 ‘거짓’들 속에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저 여정에의 의지를 가리킬 것이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무극의 삶>

 

 연극 <무극의 삶>(김태형 작, 김낙형 재구성·연출, 9월 30일~10월 12일)은 여러모로 <유사유감>과 닮아있다. 삼국유사를 편찬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의 얼개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상황을 전제한 극의 배경이 그러하며, 기록하는 인물들의 외부에서 권력이 압력을 가한다는 상황 설정 역시 유사하다. 그런데 이 연극 <무극의 삶>은 <유사유감>이 ‘유감’으로 남겨두기로 결정한 바로 그것을 어떻게든 바꿔보려 했던 한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다. 기록은 항상 기록 바깥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남기고야 마는 것일까. 우리는 한갓 거짓이 아닌, 어떤 온전한 기록을 상상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과연 모든 아픈 기억들이 스러지지 않게 붙잡아 둘 수는 없다는 것일까. 이것이 <무극의 삶>이 던지는 질문이다.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어버린 고려 충렬왕 시기, 수많은 인명들이 일본 원정에 동원됐다가 수장되거나 공녀로 끌려갔다가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때.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극은 내내 어수선한 분위기다. 군열을 이탈해 도망치던 해욱과 하제가 편찬 작업을 함께 하게 됐으나 시종 무극과 부딪치고, 공녀로 끌려갔던 적선래는 정신이 이상해진 채 돌아왔다. 편찬실의 긴장감은, 유사를 검열할 작정으로 온 원나라 출신의 왕비 원성의 등장에 절정을 향한다. 연극은 장면 전환과 대사 연결이 다소 유기적이지 않게 느껴지거나, 이야기의 잔가지들이 지나치게 많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 무수한 파편적 조각들이 종내에는 무극이라는 인물의 입체감을 창조하기 위해 수렴한다는 사실을 밝혀두는 것이 좋겠다. 온전한 기록에 대한 무극의 열망은, 여타 인물들의 제각각의 욕망 속에서 도드라져 선다.

 

 무극이 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그의 열망은 수소문(搜所聞)을 집필하여 삼국유사에 포함시키는 것인데, 수소문이란 말 그대로 “세상에 떠도는 소문을 두루 찾아 살피는 일”로, 날 것의 목소리들이 들어가기에, 자칫하면 편찬실 모두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수소문에 대한 무극의 의지는 아주 엄격하고 완고하다. “난 그것만 생각해. 오로지 그 자체인 것, 그러려면 그 자체가 전부여야 해. 그것이 아니면 나에 속할 뿐이거나 아상我相에 불과해.” 왕비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무극이 쓰고자 하는 것은, 전부가 아니면 안 되는 이야기, 기록자로서의 자신을 지워서라도 온전히 그 자체로 남아야 하는 이야기, 바로 그것이다. 

 

 극의 마지막에서 무극은 칼에 맞고 결국 수소문은 삼국유사에 더해지지 못했다. 이러한 결말을 통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기록의 유감스러운 운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만 것일까. 분명 무극의 삶은 실패했다. 그러나 연극 <무극의 삶>에는 다행히도 그 실패에 대한 위로가 존재하는 듯하다. 떠도는 소문들을 실어다주는 바람들에게서 그러한 기미를 읽을 수 있는데, 그들의 대사를 빌어 설명해보자.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눈이 귀가 된 이야기/ 귀가 입이 된 이야기/ 입이 소문이 된 이야기/ 소문이 기억이 된 이야기/ 다시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된 이야기/ 그렇게 흘러간 이야기….” 이야기는 마치 저 바람들처럼 사람들 속을 유동하며 흐른다. 사람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는 다시 사람들 속에서 읽히고 기억되고 소용되며 새로 태어날 것이다. 기록의 온전함이라는 무극의 열망이 설령 불가능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기록들은 숱한 여백들을 가지고 시간 속에서 일종의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즉, <유사유감>이 기록의 끊임없는 다시 씀을 보여주며 기록의 폭력성에 저항한다면, <무극의 삶>은 기록의 끊임없는 다시 읽기를 암시하여 기록의 불완전함을 위로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기록은 진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잊힌 과거를 현재 위에 되새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가 연극 <남산에서 길을 잃다>(백하룡 작, 김한내 연출, 9월 16일~28일)이다. 진실을 향한 끊임없는 여정, 늘 되돌아오는 이야기들, 오늘날의 일연과 무극들의 작업을 확인해 보자.

 

 “울지 마소서”, 그 모든 왕들이여, <남산에서 길을 잃다>

 

 때는 1970년대 봉제 공장. 시다들은 과도한 작업량과 저임금 속에서 하루하루를 나고 있다. 잠이 안 오는 약을 먹고, 재단사에게 타박을 받는 중에서도 보조재단사인 승렬과 시다 순애, 진숙은 소소한 꿈을 약속하며 즐거워한다. 실크 블라우스를 사 입고, 경주로 소풍가는, 다만 가난에서 벗어난 삶에의 소박한 바람. 그러던 어느 날 공장은 몇몇의 직원에게 갑작스러운 해고통보를 하고, 경찰들은 저항하는 여공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쫓겨나는 진숙과, 몸싸움 와중 맞아 죽는 순애,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 승렬.

 

 전작들에서도 그러했듯, 작가는 선인과 악인의 테두리로는 단순히 설명되지 않는 인물들을 창조해내는데 탁월하다. 시대를 길게 펼쳐놓고, 그 속에 평범한 소시민적 인물을 살게 하여, 사회 구조 속에서의 개인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이야기 방식은 이번 연극에서도 도드라진다. 이러한 연극 속 인물들의 슬픔은 너무나도 이해가능하여, 심지어 우리 대부분의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일을 배우고 돈을 벌어서, 진숙에게 사과하고 결혼도 하지만, 사업실패로 결국 사소한 행복마저 지켜내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 승렬의 어떤 대사들은, 그야말로 이 거대한 사회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잃은 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아닌가. “그래도 웃자. 우리가 왜 이렇게 인상만 쓰고 사노. 진숙아 좀 웃자고.”

 

 그런데 저 행복에 실패한 자의 슬픔, 길 잃은 자의 슬픔은 단지 근현대와 오늘날을 잇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들은 신라시대와 승렬의 과거, 승렬의 현재가 정교하게 얽혀있는 순간에 있다. 극은 장면 사이사이의 자막이나, 의아하게 돌출된 대사와 행동들을 통해 그러한 작업을 이루어낸다. 생애 늘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신하들에 의해 살해된 혜공왕과 그의 곁에서 누에를 치던 잠녀들은 승렬과 순애, 진숙으로 재탄생한다. 또, 에밀레종을 만드는데 희생된 아이와 경제발전에 희생된 순애의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한다. 순애에게서 “에밀레, 나는 하늘거리는 비단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올라” 같은 대사와, 에밀레종에 양각된 비천상을 닮은 몸동작, 그 때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식이다.

 

 그러한 시간들의 오버랩 속에서, 우리는 먼 옛날의 슬픔이 극을 통해 다시 기억되고 있음을, 동시에 저 여공들의 슬픔이 그 옛날의 것만큼 손쉽게 망각될 수도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예를 들어, 순애의 죽음 직후 장면들을 보자. 극은 승렬이 죽은 순애와 함께 경주 남산을 걷는 30년 뒤의 순간으로 빠르게 전환한다. 장면은 공장 측의 폭력에 쓰러진 여공들을 그대로 둔 채로 이루어지는 데다, 혜공왕과 승렬의 무심함이 자막과 대사를 통해 서로 겹쳐지며 더욱 쓸쓸해진다.

 

 (자막) 왕의 날들엔 변란이 잦았다. 왕은 회피하여 수를 놓았다.
 승렬: 그만 일어나입시다. (…)
 순애: (일어난다. 여공들을 본다.) 깨져버렸어. 다, 깨져버렸어. 봐요. 이, 이것 좀 봐요.
 승렬: 돌 깨진 거 대숩니까. 살아있는 사람도 깨지고 박살나고 하는데.
 슬퍼할 이유가 없다니까요. 별로 가치도 없는 유물 아닙니까.
 기억도 안 나는 저 옛날, 통일신라시대 유물. 가입시다. 영원히 있을 순 없잖아요. 

 

 이렇게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새롭게 만들어졌다. 연극은 삼국유사의 여백에서 잊혀진 슬픔을 읽어내고, 그 빈자리에 위로를 적어 넣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승렬이 자살을 결심하는 클라이맥스에서, 자막으로만 서술되던 혜공왕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승렬의 입을 빌려 무대 위로 나온다. “나의 꿈은 깨어졌다. 나의 꿈이 너무 순진했던 탓이다. 버려지고 버림받는 너희들을 거두어들인 것은 이 지경을 위함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잠녀들의 대사. “울지 마소서 왕이여.” 겹쳐진 시간 속의 저 위로는 삼국유사 속 인물들을 향한 것이자, 승렬과 여공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우리 역시 저 연극의 여백에서 오늘날의 슬픔을 읽기 때문에, 물론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여,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자여(tempus, edax rerum).” 시간은 늘 빠르게 지나버리고, 사건들은 속수무책으로 망각될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러한 망각을 이겨낼 어떤 가능성을 알고 있다. 바르트의 문구를 하나 더 인용해야겠다. “또 하나의 이름 모를 슬픔이 시작되다. 이 중단 없는 새로 시작하기. 시시포스.”(150쪽) 충분히 애도되지 않은 슬픔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시시포스의 운명을 가진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삼국유사 연극만발>의 시도들이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들을 새롭게 기록하여 과거를 위로할 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제대로 살게 하는 것. 그것은 오늘날의 무대가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하나이므로.

 

『한국희곡』 56호(2014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