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의 빛 하느님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으니, 천지창조의 날에 말씀은 곧 현상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그것과 같지 않아서, 말과 사태가 비끌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게다가 오늘날 이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이 아니고, “만지긴 했”지만 성추행은 아니며, ‘창조 경제’에는 창조가 없고, ‘진짜 사나이’에는 진짜가 없다. 분야와 계층을 막론하고 말이 이렇게 가볍다. 이를 어쩌나, 로고스의 신성함이 자꾸만 그 빛을 잃어만 가니. 허나 너무 괴로워들 마시라. 저들은 이 번잡한 시대에 어울리는 말하기를 몸소 수행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그 분’의 말하기야 하나의 화법을 수립할 정도로 유명해 더 언급할 것이 없지만, 어느 당 대표의 근래 발언들 역.. 더보기
철학나무에 부푼 시: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003 오늘날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실업했다. 거대담론의 무망함을 인정하면서, 절대정신의 불가능성을 시인하면서, 이제 철학자들은 헤겔의 후계자가 아니라 헤겔의 비판자로서만 연명할 것이다. 확고한 것은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앎(sophia)에 대한 사랑(philo-)을 표방했던 저 일군의 무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어쩌면 난감한 얼굴로 이렇게 고백할지도. “언제부터인가 내 삶이 엉터리라는 것뿐만 아니라/ 너의 삶이 엉터리라는 것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너라도 이 경계를 넘어가주었으면,/ 그래서 적어도 도달해야 할 무엇이 있다는, 혹은 누군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어떤 존재증명과 같은 것이 이루어지길…… 사람들은 왜 내겐 들을 수 있는 귀만을 허락했냐고 신에게 한바탕.. 더보기
쓰레기라는 숭고한 대상 어떤 높은 분의 말만큼 창조가 단순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쓰레기를 창조해낼 수는 있다. 내가 “쓰레기가 있으라” 하심에 쓰레기가 있으니, 봉지에 넣고 묶어 추운 날 슬리퍼를 끌고 아파트 쓰레기 수거함에 투척해야 하는 제거의 노고에 비하면, 이 창조는 얼마나 손쉬운 것인가. 쓰레기는 ‘마술적’으로 탄생한다. 사물은 당신이 그것의 불필요함을 천명하는 그 순간에 쓰레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쓰레기의 창조 이면에는 더 정확하고 주목할 만한 진실이 적혀있다. 실은 “모든 창조가 쓰레기를 수반한다.” 창조는 목적과 그 목적을 위한 설계도를 전제하기 때문에, 창조의 과정에서는 언제나 남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설계도의 어느 자리에도 명시되어있지 않은 잉여, 그것이 바로 쓰레기가 아닌가. 지금 당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