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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遺事), 되돌아오는 이야기들: <삼국유사 연극만발> 기록된 것은 언제나 기록되지 않은 것을 남긴다. 이것은 기록의 숙명이다. 그러하니 사건을, 그것도 반드시 정확히 기억되어야만 할 슬픈 사건을 기록한다는 것은 얼마나 조심스럽고 위태로운 일이란 말인가. 가령 롤랑 바르트가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애도일기』, 165쪽)고 적었을 때, 어쩌면 당신은 저 문구로부터, 기록이 가져올 수 있는 일종의 폭력을 읽어내려 할지도 모르겠다. 고유한 슬픔들은 때때로 왜곡된 채 사회의 코드에 이식되거나, 외면당하며, 망각을 요구받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들은 문자를 통해 정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어떤 기록들은 한낱.. 더보기
아버지는 답하지 않았다 시간은 속수무책이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가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애도하고, 남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한 죄책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을 양 손에 들고, 그런데 나는 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일까. 당장 알아야 하는 것들과 급히 행해야 하는 것들은 늘 책 밖에 있었는데. 언젠가 레닌은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 그 말에 기대 보려다가도, 이것은 손쉬운 현실도피에 대한 알량한 자기변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오랫동안 갸웃거렸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욥기」를 읽었다. 어느 누구보다 신실한 하느님의 자식이었던 욥은 ‘아무런 이유 없.. 더보기
분노하라, 그러나 정확하게 1. 이미, 분노사회 당신은 분명 분노했으리라.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들에, 자신의 무력함에, 윤리가 부재한 사회에, 그럼에도 이 모양인 정치에 대해. 그도 아니라면, 어쩌면 연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도무지 날 뽑지 않는 면접관이라던가, 끊임없이 날 괴롭히는 상사 때문에 분노했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팍팍하다. 기민한 누군가는 이미 이곳을 ‘분노사회’라고 명명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말대로 “나와 세계의 관계가 부조화하다는 느낌”이, 그리하여 “삶이란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기분”이 분노를 낳는다면, 세상에, 오늘날 분노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연극은 그러한 삶에서 제 표정을 배웠다. 5‧18민주화항쟁, 후쿠시마 원전사고, 위안부 문제 등 소재 자체로 시대의 공분을 다루는 작품은 올해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