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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몇 가지 실패담: 소설 『김 박사는 누구인가?』 김박사는누구인가이기호소설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이기호 (문학과지성사, 2013년) 상세보기 “안녕하세요, 저는 천구백팔십팔 년 팔월 이십오 일 태어난 ‘백수향’이라고 합니다. 칠 년 간 대학을 다녔고, 십 학기를 등록했으며, 휴학 두 번, 이천십삼 년 팔월 이십구 일자로 졸업합니다. 혈액형은 O형이고, 무남 이녀 중 차녀, 몸무게는 오십삼 킬로그램이구요. 지금 소설 『김 박사는 누구인가』 얘기 좀 하려는데, 근데 저기요, 혹시… 저 아세요?” 나는 누구인가. 이제는 당신도 알고 있을 몇 가지 표면적 사실들과, 당신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는 내가 살아온 시간들과, 나조차도 알지 못할 심연의 무엇으로 이루어진 나. 우리는 누군가의 정면을 보기 위해 늘 저 세 가지 범주 어딘가에서 고민하지만,.. 더보기
"얼마나 무서웠을까"라는 잊혀졌던 말, 「트로이의 여인들」 2013년 7월 27일(토) 오후 7시 반 게릴라 극장 예술감독 윤광진 극작 에우리피데스 용인대학교 뮤지컬연극학과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현실과 유리돼버릴까 걱정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해본다. 삶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를 공부하다 삶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연극이론을 공부하다가 막상 무대와는 멀어지지 않을까하는 고민들. 지금 와서는 우습도록 성급한 그 물음은 실로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결국 서로 연결돼있었다. 가령, 『예외상태』를 읽고 나면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 소식을 듣게 되고, 『호모사케르』를 읽고 나면 난민수용소에 갇혔던 김인수씨의 인터뷰를 보게 되는 식으로.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는데, 현실에서 그러했듯 책에서도 해답을 구할 수 없었으며, 책에서 그러했듯 현실에서도 나는 무력했다는 것.. 더보기
오레스테스야, 나는 아직 할 말이 있다, 「오레스테스 3부작」 2013년 6월 14일(금) 오후 8시 게릴라 극장 예술감독 이윤택 극작 아이스퀼로스 연희단거리패 한 선생님께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들어 “영웅에 초점 맞춘 비감이 오히려 살해된 개개인의 고통을 쉽게 잊히도록 했다”고 평했을 때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몇 번이고 눈이 붓도록 우는 것으로 그들의 재앙을 공유했다고 믿은 나로서는, 그때 용해돼버린 무엇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가볍게 망각하고 나서야, 곧 말라버릴 따뜻한 눈물의 위험함을 알겠다. 비극 속에도 선의가 있었다고 내뱉는 순간 우리는 비극 자체를 보기를 멈춘다. 그곳에도 화해의 여지가 있지 않았냐고 묻는 순간, 우리는 도저히 봉합되지 않을 상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제 시대는, 삶에 필요.. 더보기